1억원을 더 내라고?"…리모델링 대상 단지 주민 '시큰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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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정완ㆍ최현주 기자] 정부의 노후 아파트 정책이 크게 바뀐다. ‘헐고 다시 짓는 재건축’ 대신 ‘고치고 늘려서 계속 쓰는 리모델링’을 활성화하는 방향이다.

국토교통부가 6일 내놓은 ‘리모델링 수직증축 허용방안’은 기존 아파트 건물 위로 2~3개층을 더 올리고 가구수를 기존보다 15%까지 늘릴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 주내용이다.

수직증축으로 늘어나는 가구를 일반 분양으로 팔아 리모델링 사업비에 보태도록 할 수 있게 한 것이다. 400가구 짜리 아파트 단지가 리모델링을 하며 60가구를 새로 지어 가구당 5억원에 판다면 300억원의 사업비를 확보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현재 재건축 사업은 아파트를 지은 지 최장 40년이 지나야만 추진할 수 있다. 리모델링은 지은 지 15년만 지나면 가능하다. 아파트가 낡아 주민들의 불편은 크지만 재건축을 하려면 아직 한참 기다려야 하는 단지에서 리모델링에 대한 관심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현장 분위기 아직은 '잠잠'

분당ㆍ일산처럼 1990년대 이후 건설된 수도권 1기 신도시가 대표적이다. 전국적으로 지은 지 15년이 넘은 아파트는 약 400만 가구, 20년이 넘은 아파트는 197만 가구에 달한다. 현재 수도권에서 리모델링을 추진중인 단지는 36곳, 2만6000가구다.

김재정 국토부 주택정책관은 “분당 등 1기 신도시에선 리모델링으로 가구수가 늘어나더라도 상하수도ㆍ공원ㆍ녹지 등 기존 기반시설에 대한 추가 부담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도로와 주차장 등 교통시설의 용량 부족과 동시다발적인 리모델링 사업추진으로 이주수요가 집중되는 문제는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수직증축은 건설업계에서 줄기차게 요구했던 사안이지만 이명박정부 시절엔 안전 문제를 내세워 불허했다. 하지만 박근혜정부는 건축기술의 발전으로 수직증축을 해도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대신 수직증축에 앞서 2차례에 걸쳐 외부 전문가의 안전진단과 안전성 검토를 받도록 했다.

안전진단을 위해선 아파트 단지 신축 당시의 구조도면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김 정책관은 "전국적으로 9% 정도의 아파트 단지에서 신축 당시의 건축도면이 남아있지 않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차정윤 한국리모델링협회 사무처장은 “이번 정부 대책에는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건의했던 내용이 많이 반영됐다”며 “그동안 리모델링에 관심은 있지만 사업성이 불투명해 사업추진이 지지부진했던 단지에서 본격적으로 리모델링에 나설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고 말했다.

이근우 현대산업개발 도시재생팀 부장은 “수직증축도 중요하지만 일반 분양 물량이 종전 가구수의 10%에서 15%로 늘어나면서 사업성이 매우 좋아졌다”며 “특히 일반 분양이 상대적으로 쉽고 분양가도 높은 한강변이나 역세권 단지 등에 호재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현장 분위기는 아직까지 잠잠하다. 결국 돈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리모델링을 하려면 일반 분양을 감안해도 가구당 평균 1억~2억원이 더 필요하다. 집값 상승기에는 큰 부담이 아닐 수도 있다. 리모델링에 투자한 돈보다 집값이 더 많이 올라 차익을 기대할 수 있어서다.

하지만 지금 같은 주택시장 침체기에는 주민들이 거액을 들여 집을 고치기엔 부담이 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경기도 분당신도시 행운공인중개사무소 이영주 대표는 “젊은 층은 리모델링에 관심이 많은 편이지만 나이 든 주민들은 가구당 1억원씩이나 내고 리모델링을 하는 것에 소극적”이라며 “수직증축 허용으로 집값이 오르는데 도움이 될 것이란 기대감은 높지만 당장 리모델링 사업추진에 나서겠다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전했다.

홍석민 우리은행 부동산연구실장은 “리모델링을 하면 최소한 주민들이 낸 돈 이상으로 집값이 올라야 하는데 부동산 침체기에는 장담하기 어려운 문제"라며 "정부 대책의 효과는 지역별·단지별 특성에 따라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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