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경제 리포트] '시장의 상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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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와그라노 니 또 와그라노…뭐라 케싼노 뭐라 케싼노 니…니 단디해라…니 그라다 다친데이…."

요즈음 한창 뜨는 '강산에'의 '와 그라노'가사다.

아마 재벌들이 속으로 부르는 노래일 게다. "와 또 못살게 그라노"하고. 새 정부 사람들도 그 노래를 부르고 있다. "와 싸다니면서 우리 정책이 잘못됐다 케싼노"하고.

재벌 개혁을 두고 질 게 뻔한 싸움을 재벌들이 벌이고 있다. 우리 사회가 반(反)기업적으로 돌아서서 그 싸움에서 진다는 얘기가 아니다. 재벌들의 주장이 보통사람들의 상식에 밀리는 것 같아서다.

(증권 관련) 집단소송제. 아마 도입될 게다.

증권가에 물어보면 대부분의 사람이 도입해야 한다고 한다.

재벌들의 삶의 터전인 '시장'부터 그 경영을 불투명하고 불공정하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이라면 여느 기업들보다 더 투명한 정도(正道)경영을 해야 한다는 게 시장의 상식이다. 그 상식 앞에서는 "집단소송이 남발될 수 있다"는 우려는 빛을 낼 수 없다.

포괄적 상속.증여세도 마찬가지다. 결국 도입되고 말 게다. 사촌이 논 사면 배 아파 해서가 아니다.

보통부자들은 자식에게 수억원대의 재산을 물려주면 몇억원씩 세금을 낸다. 큰 부자들은 분명히 몇천억~몇조원의 재산이 2세에게 넘어갔는데, 무슨 재주를 피웠는지 몇백억원 정도의 세금밖에 내지 않는다.

이런 걸 두고 '뭔가 잘못돼 있다'고 생각하는 게 보통사람의 상식이다. 그들에게는 조세법률주의 같은 법 논리는 먹히기 힘들다.

서로간에 상처만 남을 싸움은 이제 그쳤으면 한다. 결국 질 싸움이라서가 아니다. 큰 양보로 더 큰 걸 얻을 수 있어서다. 개혁 방안 중에 상식에 맞는 건 재벌 스스로 '도입하자'고 하고, 대신 "그 제도가 악용될 소지를 줄이도록 같이 애쓰자"는 게 낫다는 말이다.

재벌들이 나서서 "집단소송제 도입하자. 그러나 마구잡이 소송이 생기지 않도록 규정을 세심하게 만들자""상속.증여세 포괄주의로 가자. 그러나 세무공무원 눈치 볼 필요 없게 과세기준을 더 투명하게 만들자"고 하는 게 어떨까.

그래야 모든 기업이 마음껏 활개치는 시장경제를 염원하는 사람들이 "재벌도 우리 기업이다. 출자총액제한 같은 이상한 규제를 풀어 재벌이 우리 경제를 살찌우기에 나서게 하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하면 정부도 재벌 편을 든다는 소리 들을까 눈치 안 보고 '기업하기 좋은 나라'만들기에 나설 수 있고, 보통 사람들도 자연스레 부자와 대기업을 존경하게 되지 않을까.

김정수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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