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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전은 왜 발전 않는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미술의 가을에 가장 성대한 잔치가 되는「국전」은 오는 10월5일부터 경복궁 미술전시관에서 열릴 예정이다. 그러나 해마다 기대는 크면서도 막상 전람회가 열리고 보면『금년도 그게 그거라…』하는 식으로 우리 국전에는 왜 발전이 없는가 하는 많은 불만과 탄식의 소리를 듣는다. 그 이유로는 우리 미술계가 전반적으로 곤궁하고 생기가 없기 때문이라고도 할는지 모르고 또 한 걸음 나아가서는 우리사회의 문학·시·예술계 내지는 사상적 동향이별로 씩씩치 못하기 때문이 아니겠느냐고도 할 것이다.
그러나 시나 문학이나 사상이나 예술에 뜻을 두는 사람이라거든 환경의 어떤 어려움에도 능히 이겨나가는데서 홀로 외롭고 고단하면서도 먼 앞날을 내다보는 선지자 같은 창조의 업적을 남길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미술에 뜻을 두고 창작의 길에 정진코자 하는 젊은층이 해마다 늘어가고 있는 것은 현저히 눈에 보이고 있다. 그들이 그림을 그려서 치부하겠다는 생각은 꿈에도 없다.
그런 만큼 적어도 국가의 이름으로 높은 명예의 상을 내걸고 미술의 잔치를 마련하는 것인만큼 어떤 불만과 고통이 따른다해도 국전은 국전대로 발전될 수 있는 길을 위해서 미술인 자신들의 높고 굳센 예술의 정신과 그 수고에 기대지 않을 수 없다할 것이다. 또 그와 동시에 국전을 주관하는 정부의 책임당국자들도 한낱 연중행사로서 사무적인 예산소화에 그칠 것이 아니고 국전의 내용이 해마다 새 정신을 풍길 수 있는 발전을 위하여 달리 크게 생각함이 있어야 할 것이다.
공통된 기준
국전의 발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국전의 심사기준에 커다란 반성과 개혁이 있어야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반증으로는 우선 해마다 전시회장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당황치 않을 수없고 또 국전을 위하여 수치스러운 느낌을 가지게 되는 일을 들 수 있다. 이것도 저것도 모두「입선작」이라고 하여 남대문이나 동대문시장 점포에 싸구려 상품을 쌓아놓듯이 전시회장안에「작품」이란 것을 빈틈없이 두겹 세겹 걸어 놓고 있는 일이다. 이것은 확실히 심사의 기준이 무분별함을 스스로 폭로하고 있는 것이다.「작품」심사의 표준이라든가 그 방향을 가지고 말하기 전에 전람회장의 전시광경부터가 비미술적 전시인 점에서 심사전시위원들의 견식이 논란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또 작품으로 말하면 동양화이건 서양화 또는 조각 기타의 여러 부문의 각기 다른 형식을 가진 것이라고 하더라도 국전이라는 어떤 공통된 기준을 가져야 할것이다.
어느 해나 대개의 국전은 심사위원들이 거의 무제한했다고 할만큼 선심을 베풀었다는 느낌을 가지게 했다. 우선 전시장의 면적을 잘 고려해서 제한된 장소인 만큼 그중 좋은 작품을 엄선해서 진열하되 좋은 작품이라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우러러 볼 수 있을 만큼 보기좋게 공간을 살려가면서 진열하여야 한다.
전시장에 걸리는 작품이란 것에는「입선작」의 수준여하만이 문제가 아닐 것이다. 적어도 심사위원의 높은 책임을 가진분들, 그 밖의 무감사 추천의 대우를 받는 작가들의 작품에 이르러서는 출품자 자신이 누구보다도 자기 것에 대한 엄격한 비판의 눈을 가져야 할 것이다. 특등 대우를 받는 분들의 작품이 입선작과 별반 구별될 여지가 없다면 이는 진열 아니한 것만 같지 못할 것이다.
창작의 명예
그러면 심사의 기준이란 어떤 것이어야 한다는 말인가고 물을는지 모른다. 사실 심사의 기준이랄까 표준·방향등을 말하기는 대단히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쉽게 말하자면 미술이란 것의 발전의 역사가 적어도 수 천년을 경과하는 가운데 이미 움직일 수 없는 그림 그리기의 표현상의 형식도 서 있고 그 형식과 아울러 그 형식 속에 담겨있는 생각의 발전의 자취도 역연한 것인 이상 오늘 이 시대의 미술이 나아가야 할 길도 당연히 여러모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심사의 방향이나 수준이란 것도 토론의 여지가 많을 수 있을 것인 것이다.
즉 창작의 명예를 가져야하는 작품의 수고가 어디에 있어야 하겠느냐고 할때 우리나라에도 적어도 이천년래로 미술문화의 중단 없는 발전의 역사를 가진 만큼 우리는 우선 우리들로서 몸에 밴 전통의 배경을 가질 것과 동시에 세계적인 조류 속에서 남 아닌 자기를 발견해내는 창의의 예술성을 가진 작가를 발굴해내야 할 것이다.
국전은 생기가 약동하는 새 출발을 위하여 어떤 개혁이 없을 수 없다는 것이 당면의 과제라고 한다면 종래의 심사표준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고 심사위원에도 좀더 원만을 기약하면서 또 참신을 꾀할 수도 있는 것이다. 우선 방편상 가장 가능하고도 효과적인 것으로는 모든 출품작품을 엄선하여 진열의 미술적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만큼 진열작품 점수를 대폭 줄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상」의 표준을 어디다 두느냐 하는 점도 심사위원들의 시대적 감각과 견식을 걸고 대표적 작품을 선정토록 극히 신중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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