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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난의 연속|체코비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자유의시련」속에서 몸부림치고 있는 「체코슬로바키아」는 예로부터 수난의 수레바퀴 속에서 지내왔다.
9세기의 대「모라비아제국」시대에 「체코」와 「슬로바키아」두민족은 통일국가를 형성했는데 그 붕괴로「슬로바키아」지방이 「헝가리」의 지배하에 들어갔고 「체코」가 「오스트리아」에 예속되어 오랫동안 암흑시대를 맞았다.
1918년 1차세계대전 끝에 「체코」공화국을 건국했으나 그것도 한때의 기쁨에 지나지 않았다. 1938년 「히틀러」의 독재가 굳어지면서 「체코」는 다시「나찌」의 군화에 짓밟혔다.
그후 2차대전후 1948년 획득한 사회주의정체로, 「스탈린」의 압박에 공산정권으로 바꿔졌고 1968년 자유민주 독립국가 수립을 꾀했으나 다시 소련군의 「탱크」와 총검아래 큰시련을 겪게됐다.

<단원 비밀투표제|정치>
오는 10월28일로써 건국50주년을 맞게될 「체코」는 인구 1천5백만에 면적 13만평방킬로의 작은나라로 1918년 이래의 국호인 「체코슬로바키아」공화국을 지난 60년7월11일「체코슬로바키아」사회주의공화국으로 개칭, 국민의회에서 뽑는 임기5년의 대통령이 국가원수로되어있다.
의회는 의원정수 3백명의 단원제로서 선거는 비밀투표에 의한 직선제지만 입후보자는 민족전선·노동조합·문화단체의 추천에 한하고있다.

<교역40%가 소상대|경제>
생활수준은 사회주의제국(공산국가) 중에서도 가장 높으며 48년이래 실시중인 의료제도와 사회보장제도등은 높이 평가되고있다.
66년부터 제4차 경제5개년계획을 실시중에 있는데 47년이후 60년까지 순조로왔던 국민소득(연평균11.6%)은 60년이래 둔화, 전년에 비해 낮아지고있다.
산업은 중공업국으로서 세계10대 기계수출국의 하나가 되고있다.
통장관계는 소련이 전체의 40%, 그밖의 3분의1이 동구제국이다.

<「드볼자크」의 나라|문화>
종교는 거의「가톨릭」신자로서 종교인구는 97.6%다.
교육은 7년 의무제로 초등학교수가 2만6천5백64(학생수 5백52만7천) 중등교 8백66 (32만2천7백) 대학·전문교 73(27만3천3백)이다.
「체코」문학은 이방의 침략에대한 애국적 감정의 강렬한 표현으로 점철되어있다.
이러한 기반위에서 황금시대를 맞이하기는 19세기. 선구시인「마하」는 오늘날에도 학생들사이에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결의의 상징으로 추앙되고있다.
또 연극의 아버지「틸」은 「체코」국가의 가사인 『내집이 어디냐』를 지어냈고 여성작가「네므초바」는 여성해방운동의 선구자.
1918년 건국과 더불어 제2의 황금시대를 맞이한 「체코」문학은 「차베크」「하셰크」등 사회비판의 작품이 압도했으나 39년「나찌」점령으로 다시 수난을 겪었다. 후년 해방후의 전후문학은 「쿤데라」「루스티크」「흐라발」등이 사회주의란 조건하에서도 사회의 비판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있다.
그러나 이와같은 「체코」의 작가 가운데서 우리에게 가강 잘 알려진 작가는 「프란츠·카프카」(1883∼1924). 그는 「변신」「성」등 작품을 독일어로 발표, 현대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꼽히고있다.
이밖에 또 널리 알려진「체코」의 예술가중에는 교향곡5번 「신세계」의 작곡가 「안톤·드볼자크」(1841∼1904)를 빼어놓을 수없다. 그는 1873년 국가상을 받기도 했다.「프라하」 방송국이 소련군의 진흙발에 유린되기직전, 마지막으로 방송한「나의조국」은 「체코」근대음악의 기초를 닦은 「베드루이치·스메타나」(1824∼84)의 교향시이며 그 중 「몰드」강은 더욱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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