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발전과 논리적 책임|이규호 <연세대교수·철학박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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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심장이식이 의술의 발전에 의해서 가능하게되자 인간의 생명과 죽음에 대한 새로운 논의를 불러 일으켰다. 지금까지는 심장의 기능이 멈추어지면 인간의 생명은 끝난 것이고 따라서 그것은 완전한 죽음을 뜻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심장을 갈아넣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으니 뇌세포기능의 정지가 완전사를 의미한다는 새로운 해석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러나 심장이식이 기술적으로는 성공했다 할지라도 실제에 있어서는 여러가지 어려운 문제들을 동반한다는 것은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도 쉽게 알수 있다. 어떤 사람의 심장을 뽑아서 어떤 다른 사람의 생명을 어느정도 연장시키느냐는 것이다. 아무도 심장을 둘가진 사람은 없기 때문에 심장을 뽑는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심장이식은 엄밀하게 따지고보면 한 인간의 생명을 위해서 다른 한 인간의 생명, 그것이 아무리 짧은 것이라 할지라도 희생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여기에는 기술적으로만 모든 문제들을 다루는 사람들이 흔히 잊어버리기 쉬운 중대한 윤리적인 문제가 제기된다.
예를 들면 한 인간이 몇시간은 더 그의 생명을 유지할수 있는데 다른 한인간의 몇개월 혹은 몇년동안의 생명연장을 위해서 희생되어도 좋다는 공리적인 판단이 윤리적으로 정당하냐는 문제 등이다.
현재는 기술문명의 시대이다. 현대인은 따라서 기술에만 의존하며 기술에만 관심을 갖는다. 인간의 자연적인 생명뿐만 아니라 그의 삶전체가 기술적으로 다루어진다. 자연적인 생명이 기술적으로 많이 연장되고 사회적인 삶이 기술적으르 놀랄만큼 편리해졌다. 이렇게 해서 인간의 노력은 「기술」만을 지향한다.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의학뿐만 아니라 인간의 사람됨을 다루는 교육학도, 인간의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삶의 현장을 다루는 경제학·정치학도 기술에만 관심을 갖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이 모든 학문들이 「how to」의 기술만을 연구한다.
그중 하나의 예를 들면 교육학은 최근 「인간공학」으로 자처하게 되었다. 교육학은 사람을 군인으로 만들라면 군인으로 만들고 도둑으로 만들려면 도둑으로 만들 수 있는 기술을 연구한다는 것이다.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기술에만 관심을 갖는다는 것이다. 목적 그 자체에 대한 윤리적인 판단은 이 모든 학문들의 관심사가 아니다. 이것은 현대인이 그리고 우리의 시대가 얼마나 기술에만 관심을 갖고 그의 윤리적 책임을 등한시하는가를 나타내는 것이다. 인간이 기술적으로 아무리 큰 발전을 가져와도 그의 윤리적인 책임이 등한시되면 그것은 참다운 의미에서 인간을 위한 위대한 업적이 될수는 없다. 심장이식의 성공은 기술의 발전을 나타내는 것이지만 여기에는 신중한 윤리적인 책임의식이 따라야한다. 기술의 교육적인 경제적인 정치적인 어떠한 성공도 인간을 위한 참다운 책임의식을 통해서만 위대한 업적으로 남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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