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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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여름은 이제 한고비에서 이마의 땀을 식힌다. 요즘엔 피서지를 다녀온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검은 팔뚝에서 매미처럼 허물들이 벗어진다. 윤이 흐르는 여름의 발랄한 청동빛들.
강류천지외, 산색유무중. (강은 끝닿은데 없이 흘러가고, 산빛은 아슴푸레 잠겼구나.) 팔뚝이 새하얀 사람들은 먼빛으로 왕유의 시나 읊고 앉았을까. 정신적 청량인 셈이다.
문득 생각이 난 친구에게 전화를 걸면 방금「휴가중」이라는 말을 이즈음 자주 듣는다.「휴가부재중」이 그리 귀하지 않은 세상이 된것 같다.
웬만한 직장에선「보너스」휴가까지는 바라지 못해도 결근계없는 휴가들을 주고 있다. 하긴「이탈리아」같은 나라에서는 휴가가 헌법 정신으로 되어 있다. 『휴가를 가질 권리를 포기하지 않는다. 』「이탈리아」헌법(36조)은 모든 월급장이들의 휴가를 보증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지나쳐 연간 2개월씩이나 휴가를 남발하는 경우가 있어 생산의욕을 저하시키고 있다는 경제학적 반발도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우리네야 그렇게까지 흐드러지게 휴가를 절규할 현실은 못된다. 한뼘만한 반주간휴가도 금싸라기처럼 소중하다. 그러나『도시를 떠날 것이냐, 말 것이냐』는 문제는 휴가족들에겐 새로운 걱정거리가 되었다. 서울역의 암표에서부터 피서지의 폭력적「바가지」에 이르기까지 금싸라기 휴가들을 짐스럽게 하지 않는 것이없다. 차라리 피서행차는 놋대야의 냉수만도 못하다는 도시고수파가 하나둘 늘어나고 있다.
어느새 8월 복더위도 두고비 지나 갔다. 아직도 도시에서 망설이며 공연히 마음만 설레는 사람들이 퍽 많으리라. 이제 말복이 성큼성큼 다가 온다. 휴가는 그렁저렁 지나가는것이 아닌가. 이제 여름도 별수없이 숨을 죽일때가 되는가 보다. 새삼『시절은 빠르구나!』영탄에빠진다. 하긴 요즘의 아침저녁엔 계절의 첨병이 서성거리는지 서늘한 기운이 어깨에 스친다. 삐륵, 삐륵, 삐르르….
저 소리는 또 누구의 영탄인가. 가을의 전령들은 벌써 우리옆에서 방울을 흔드는지도 모른다. 그러고보니 하늘도 높아진듯한 착각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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