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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 보는 세상… 그들이 찍으면 피카소·백남준이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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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한 콘서트장 사진. 초점을 맞춘 부분이 색다르다. 기타리스트가 아니라 기타의 머리 부분이다. 연주자는 왼쪽 아래 귀퉁이에 얼굴 윗부분만 찍혔다. 갯벌에서 촬영한 갈매기 사진엔 제대로 된 갈매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한가운데가 텅 비었다. 사진의 주인공인 갈매기들은 가장자리에 날개와 부리만 살짝 걸쳤다. 어둑해질 무렵 광화문 빌딩은 비스듬하다. 백합은 전체 모양 대신 꽃술만 클로즈업했다.

 주인공이 중심에서 비켜난 배치, 위태위태한 구도, 프레임에서 벗어나 잘린 피사체. 형태만 보면 영락없는 B컷(문제가 있어 사용하지 않는 사진) 같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일탈을 보는 묘한 쾌감이 있었다.

 이 사진들은 세상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들이 촬영했다. 보지 않고 촬영하다 보니 ‘독특한’ 장면들이 담겼다. 갈매기 사진은 소리를 듣고 서둘러 카메라 셔터를 누른 순간 탄생했다. ‘끼룩끼룩’ 하는 갈매기 소리가 사진의 주인공이다. 꽃술 클로즈업 사진 바깥엔 손가락으로 백합을 만지고 있는 작가가 숨어 있다. 꽃술의 질감을 나타내고자 했단다. 비스듬한 건물은 시각장애인이 자연스럽게 카메라를 들면서 만들어졌다.

 어떻게 찍었는지 궁금했다. 지난달 27일 서울 동숭동 상명대 예술디자인센터. 시각장애인들에게 사진을 가르치고 있는 양종훈 상명대 사진학과 교수를 만났다. 지난해 수업을 받은 최진석(27)씨와 윤성미(26·여)씨도 함께했다. 인터뷰는 시종일관 유쾌했다. 시각장애인 작가들은 자신감이 넘쳤다. 양 교수가 대뜸 칭찬부터 한다. “감히 세종대왕 동상을 절반만 잘라내기도 하고 비스듬하게 표현하기도 해요. 피카소나 백남준이 했던 ‘파격’을 맘껏 시도하고 있는 거죠.”

"시각장애인들 대상에만 온 신경 집중"

시각장애인 윤성미씨가 양종훈 교수(왼쪽)의 설명에 따라 왼손으론 조각상을 만지면서 오른손으로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다. 시각장애인들은 이처럼 손으로 ‘본’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오른쪽은 시각장애인 사진교실인 ‘마음으로 보는 세상’의 작품들. 초점도 엉뚱한 곳에 맞춰져 있고 대상도 기울어져 있기 일쑤다. 하지만 이런 독특함 때문에 오히려 촬영 당시의 느낌과 스토리가 살아 숨 쉬는 작품이 됐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마음으로 보는 세상]▷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같은 날 동숭동 꼭두박물관 정문. 윤씨와 최씨가 얼굴이 큰 우스꽝스러운 꼭두조각상 앞에 섰다. 비가 한두 방울씩 떨어지는 날이었다. 이들은 촉촉한 물기가 남아있는 조각상을 향해 손을 뻗었다. 조각상 코에 손을 대더니 입과 귀로 옮겨갔다. 잠시 고민하던 이들은 이내 셔터를 눌러대기 시작했다. 최씨는 한 발짝 물러서기도 하고 몸을 숙이기도 하면서 다양하게 각도를 잡았다. 윤씨는 조각상에 손가락을 붙인 채 사진을 찍었다.

 양 교수는 둘의 사진을 보며 설명을 해줬다. “색은 보랏빛이고, 사진 중에 얼굴이 이만큼 나왔고…” 등등의 얘기를 건네며 손바닥에 그림을 그려준다. 대략의 윤곽을 알려주는 과정이다. 설명을 듣고 난 뒤 이들은 다시 카메라를 잡았다. 이 과정을 여러 번 반복했다. 일반인이라면 십중팔구 카메라를 세로로 들고 서너 발짝 떨어져 조각상 전신을 담는다고 한다. 코나 귀의 모습은 촬영 후에도 당연히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들이 찍고 싶은 내용은 일반인들과는 달랐다. 우스꽝스러운 조각상의 코, 빗물에 적셔진 매끈한 질감을 담으려 했다. 손으로 ‘본’ 모습이다. 시각장애인 사진교실인 ‘마음으로 보는 세상’의 김민지 사무국장은 “일반인들은 사진을 촬영할 때 자꾸 뭔가를 더하려 하는데, 시각장애인들은 대상을 정하면 그것에만 온 신경을 집중한다”고 설명했다.

 시각장애인이 사진을 찍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크게 다른 점이 있다면 일반인은 두 손으로 카메라를 고정하지만 이들은 주로 한 손으로 찍는다. 다른 한 손은 눈이 돼 찍는 대상을 만진다. 최씨는 “보통 비장애인 ‘멘토’와 2인1조로 사진을 찍으러 가는데, 앞에 뭐가 있는지 알려주면 먼저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려본다”고 했다. “여러 장을 찍어 멘토에게 보여주죠. 제가 볼 수는 없으니까요. 그러면 제 손바닥에 그리며 하나씩 표현을 해줘요. ‘여기는 풀이고요, 여기는 하늘이고요’ 하는 식으로요. 특정 자세로 촬영하고 같은 자세로 다시 찍는데 그때마다 카메라 각도를 바꿔가면서 원하는 모습을 찾아요.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공을 들이는 만큼 더 특별하죠. 그러곤 마음속 앨범에 소중히 간직을 해요. 제 작품이니까요.”

 양 교수가 진행하는 시각장애인 사진교실은 2007년부터 매년 열렸다. 6~11월 매주 토요일 10~12명의 시각장애인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모여든다. 수업은 철저하게 실습 위주다. 한 주는 경치가 좋은 곳으로 떠난다. 다음 주에는 실내에 모여 지난주 촬영한 사진을 놓고 열띤 토론을 벌인다. ‘안 보이는데 어떻게 비평을 하느냐’라는 질문에 윤씨는 “눈이 안 보여도 설명을 들은 뒤 내가 생각한 앨범 속 사진과 비교를 해본다”고 했다. 검토하는 사진은 일인당 5~6장. “과감하지 못하고 우물쭈물거려 아쉽다” “색다른 구도라 재미있다”는 지적과 칭찬이 이어진다.

 떠나는 곳은 일반인과 다르지 않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인사동 거리나 창경궁, 광화문 광장 등. 자칫 위험할 수 있는 갯벌이나 산으로도 갔다. 시각장애인들이 먼저 어디로 가고 싶다고 말하는 경우도 적잖다. 이동할 땐 멘토와 시각장애인 등 20~30명이 함께 움직인다.

 “일반인들은 동물원에 가면 거의 대부분 동물을 찍죠. 하지만 시각장애인들은 동물 대신 다른 것에 관심을 두는 경우가 많아요. 동물원 창문만 찍거나, 나무 앞에서만 셔터를 누르는 식이죠. 동물 사진도 재미있어요. 코끼리가 반만 나오기도 하고, 동물이 사라져 있기도 하고요. 관점이 전혀 달라요. 거기에 깨달음의 다양성이 있는 거죠.”(양종훈)

시각장애인이 사진 찍는 건 불법?

 양 교수는 미국 유학 중이던 1989년 시각장애인도 사진을 찍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 시각장애인 부부의 사진 촬영 때였다. 문득 특별한 생각이 들었다. ‘이들이 내 모습을 찍어보면 어떨까.’ 카메라는 요즘처럼 자동으로 초점이 맞춰지지 않는 무거운 필름 카메라였다. 촬영한 사진을 바로 확인할 수 있는 방법도 없었다. 대충 거리를 알려주고 사진을 찍어보라고 했다.

 현상 작업을 하던 그는 깜짝 놀랐다. 의외로 멋진 사진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때 생각했죠. 과학자가 놀고 있지는 않으니까 언젠간 시각장애인들도 사진을 다룰 수 있는 때가 올 거라고요.”

 그런 날은 20년 후 다가왔다. 디지털 혁명이었다. 자동 초점맞춤 기능(오토 포커스)이 생겼다. 디지털 카메라가 보급돼 필름 걱정할 필요도 없어졌다. 카메라는 한 손에 들 정도로 가벼워졌다. 모니터로 곧바로 찍은 사진을 확인할 수도 있게 됐다. 설명해줄 사람만 있으면 시각장애인도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양 교수는 이를 “시각장애인과도 사진으로 소통이 가능해진 것”이라고 표현했다.

시각장애인들이 멘토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양 교수는 2007년 시각장애인 사진교실을 열고 시각장애인협회를 통해 10명을 모집했다. “수업을 마무리하고 종로의 술집에서 한 학생이 건배를 했어요. ‘시각장애인이 사진을 찍으면 법에 걸리는 줄 알았다’더군요. 그 말에 눈물이 핑 돌더라고요. 그러곤 ‘사진 전시회까지 했는데 앞으로 뭔들 못 하겠느냐’고 하는데, 그때 ‘이 일을 평생 해야겠구나’라고 결심했어요. 힘 닿을 때까지 계속할 겁니다.”

 양 교수는 “수업을 진행하면서 시각장애인이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걸 알리는 수준을 넘어보고 싶단 욕심이 생겼다”고 했다. 결과물로 일반인들에게 감동을 주고 싶었다. “초점·노출에서 해상도 조정까지 카메라의 모든 기능을 다 가르쳤어요.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빛에 대해 설명한 셈이죠.”

 교육을 받으러 온 사람들은 다양했다. 나이·직업은 물론 장애 정도도 제각각이었다. 절반가량은 완전 실명이었고 나머지는 1~4급 약시였다. 형체는 보이지 않지만 빛이 어느 방향에서 오는지 정도는 느끼는 사람도, 코앞으로 물체를 들이대면 대략적인 윤곽은 확인 가능한 사람도 있었다. 김준범씨는 왼쪽 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오른쪽은 윤곽만 겨우 보인다. 그가 자신이 보는 세상을 사진으로 나타내고 싶어 촬영한 작품이 있다. 카메라 앞에 손을 놓고 엄지와 검지로 멀리 보이는 사람을 잡는 것처럼 찍은 연작 시리즈다. 한 번은 손가락에 초점을 두고, 한 번은 멀리 있는 사람에게 초점을 맞춘다. 양쪽 눈의 세계가 다르다는 걸 표현한 것이다.

 시각장애인들은 작품을 머릿속에 저장한다. 영상을 0과 1이라는 숫자를 통해 저장하는 디지털과 비슷하다. 다른 게 있다면 영상뿐 아니라 촬영했을 때의 기억까지 함께 담는다는 점이다. 피부에 스치던 바람, 셔터를 누를 때의 느낌 등이다.

 최씨에게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물어봤다. ‘절벽’이란 사진이라고 했다. 절벽을 담은 사진인 줄 알았는데 설명에 놀랐다. “사실 나뭇결이에요. 하지만 제가 볼 때는 절벽이에요. 카메라의 노출 감도를 낮춰 찍으면 대상이 어둡고 죽어보인다고 하더라고요. 이것을 어떻게 활용할까 하다가 노출 감도를 낮춘 뒤 나무에 카메라를 바짝 대고 찍어봤어요. 멘토가 절벽처럼 보인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앞을 볼 수 있다면 가장 하고 싶은 게 암벽 등반이에요.” 여행을 갈 수 없는 최씨는 풀과 바위를 찍고는 ‘여기는 정글이다’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여행을 떠난다고 했다.

 최씨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앞이 안 보이기 시작했다. 바이러스 염증 탓이었다. 완전히 시력을 잃은 건 6학년 무렵. 앞이 보이던 초등학교 때부터 사진에 뭔가를 담는 걸 좋아했다. 그는 그 사진들을 자신의 노트북에 저장했다. “예전에 본 장면들이 점점 흐릿해졌어요. 떠올리려 해도 투박한 선이나 기둥은 기억이 나는데, 아름다운 곡선이나 햇빛의 오묘한 스펙트럼 등은 기억이 나질 않아요. 색도 단색만 떠오르고요. 그래선지 너무 구체적으로 말해주면 이해가 안 될 때가 많아요. 머릿속에 과부하가 걸리는 거죠(웃음).”

일반인 멘토들 실습 자원봉사

 윤씨가 좋아하는 작품은 왼손바닥에 앵무새를 올려놓고 오른손으로 촬영한 사진이다. 손바닥에 올린 모이를 콕콕 찍는 새 부리의 느낌을 사진에 담았다. 그에게 사진은 돌파구였다. 윤씨는 돌이 지날 무렵 시력을 잃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쯤엔 병에 걸려 휠체어 신세까지 지게 됐다. “사진을 배우기 전엔 혼자 컴퓨터만 했어요. 음성 지원이 되니 정상인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죠. 제겐 단 하나의 자유였어요. 하지만 혼자 있다 보니 우울해졌고, 가족과도 사이가 안 좋았어요. 짜증을 많이 냈죠. 다리도 불편하니 학교에서도 소외를 많이 당했고요.”

 이제 그에겐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게 생겼다. 성격도 밝아졌다. 그렇다고 모두 응원만 해준 건 아니다. “학교를 같이 다녔던 시각장애인 동생이 있어요. 사진 전시회를 보러 오라니까 ‘앞도 안 보이고 휠체어도 타면서 사진은 왜 찍어? 우리에게 사진은 종이일 뿐이잖아. 버리면 그만이잖아’라고 했어요. 설득했죠. 그래도 ‘나는 안 보이니까 못 가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언젠간 맘이 바뀌겠죠.”

 사진교실엔 원칙이 하나 있다. ‘찍고 난 뒤 후회하자’다. 앞이 안 보인다고 망설이지 말고 일단 셔터를 누르고 보란 뜻이다. 양 교수는 “사진 찍는 곳이 달나라라고 생각하라”는 말도 종종 한다. 지금의 이 사진을 찍을 기회는 다시 오기 힘들다는 의미다. 그런 만큼 항상 카메라를 들고 다니라고 가르친다.

 사진을 찍으며 ‘삶’이 바뀐 시각장애인들도 적잖다. 모든 걸 포기하고 미국 이민을 가려던 30대 안마사는 마지막이란 심정에 사진교실에 들렀다가 맘을 고쳐먹었고, 우울증에 자살까지 시도했던 40대 남성은 사진을 통해 삶의 ‘첫 희망’을 발견했다고 했다. 시각장애인 박상수씨는 사진 찍히는 것을 싫어했다. 자신의 모습이 기록에 남는 게 두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해 열린 전시회에서 박씨는 화장을 한 자신의 모습을 찍은 셀카를 작품으로 출품했다.

 지난 6년간 사진 수업을 받은 시각장애인은 43명. 은근히 예산도 많이 든다. 멀리 나가서 수업할 땐 고속버스도 빌리고 식사도 해야 한다. 수업을 마무리할 때마다 달력과 사진집을 만드는 비용도 만만찮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매번 후원이 들어온다고 했다. ‘멘토’들은 양 교수가 가르치는 사진학과 학생들이 주로 맡는다. 무료 봉사에 매주 토요일을 비워야 하지만 시각장애인보다 더 많이 자원하기도 한다.

 아쉬운 점도 많다. 무엇보다 사고에 대비해 보험에 들려 했지만 거부당했다. 장애인들이 일부러 자해할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카메라가 좀 더 편리해졌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윤씨는 “센서로 앞에 뭐가 있는지 간단하게라도 알려주는 기능이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시각장애인 사진은 해외에서도 관심이 높다. 지난 4월엔 세종문화회관에서 세계 시각장애인 작가 사진전이 열렸다. 양 교수 사진교실의 작품들도 국제적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올 연말께 유엔본부 전시도 추진 중이다. 오늘은 마침 2013년 새 강의가 시작되는 날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오는 길에 동행했던 중앙일보 사진전문기자에게 ‘사진에서 제일 중요한 게 뭐냐’고 물었다. 곧바로 “사진은 스토리”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랬다. 이들 시각장애인의 사진엔 ‘스토리’가 있었다.

글=이상화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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