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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비를 지구에서 몰아내고 싶은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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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일러스트=강일구]

어렸을 때 자주 갔던 친구네 집이 있다. 순전히 바비 인형 때문이었다. 친구 방에 들어가면 먼저 인형 상자를 끌어내려 바비에게 옷을 골라 입히고, 머리를 땋고 올리고 하며 못살게 굴었다. 나도 바비 인형이 갖고 싶었다. 그런데 바비는 그 옛날부터도 나쁜 이미지가 강해서 사달라고 조를 수는 없는 물건이었다. 과거 바비에게 쏟아진 비난은 ‘허영심이 많다’는 것이었다. 수시로 새로운 시리즈의 옷들이 나왔고, 여자아이들은 이 옷들을 사 모았다. 이 때문에 어른들은 바비가 아이들을 쇼핑중독으로 만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1980년대 미국에선 각종 전문직 여성 바비 시리즈가 나오자 보수주의자들이 ‘여자아이들을 바깥으로 나돌도록 해 전통적 여성상을 깨뜨려 가정 규율을 흔들 수 있다’며 비판했다.

 바비는 여권운동가들의 공적이기도 하다. 특히 비현실적인 몸매는 집중 공격을 받는다. 최근 영국 데일리메일은 영국의 19세 소녀 평균 체형이 32(가슴)-31(허리)-33(엉덩이)인데 바비는 36-18-33이라며, 여자아이들에게 그릇된 신체 이미지를 갖게 할 수 있다는 경고를 기사화하기도 했다. 또 소녀들이 무의식적으로 바비의 몸매를 추구해 영양실조와 거식증 등의 사회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오래된 레퍼토리다.

 최근 독일 베를린에 실물 크기의 바비부터 핑크빛 바비 생활의 모든 것을 갖춘 ‘바비인형 드림하우스’라는 테마파크가 문을 열었는데, 이곳에서 벌어지는 광경이 점입가경(漸入佳境)인 모양이다. 외신에 따르면 극렬 여성단체 피멘 회원들이 웃통을 벗고 시위를 벌이고 바비 인형 화형식을 했는가 하면, 월가에서 했던 오큐파이(Occupy)운동처럼 여성운동 단체들이 ‘오큐파이 바비 드림하우스’ 운동을 하고 있단다. 바비는 여성들에게 예뻐야 한다는 강박을 부추기므로 처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여성이 인형을 롤모델로 삼아 그렇게 되려고 애쓰는 존재라고 보는 게 제대로 여성을 이해하는 처사일까. 나는 여전히 바비만 보면 옷을 입히고 머리를 빗겨주지만 그 몸매를 부러워하고 따라 하려고 애쓴 적이 없다. 그건 그저 예쁜 물건이지 내가 추구하는 꿈이 아니다. 여자아이들이 바비와 예쁜 인형을 좋아하는 건 그저 여성들의 심미적 취향 때문일 거다. 바비는 모든 인형 중 가장 예쁘지도 않다. 그럼에도 바비는 55년간이나 논란의 중심에 서며 승승장구해 왔다. 욕을 먹을수록 강해졌다. 사람들은 화제에 오르는 물건을 갖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렇게 바비를 지구에서 몰아내고 싶다면 차라리 무시하는 게 나을 거다. 인형을 상대로 호들갑을 떨며, 여성들을 인형이나 따라 하려는 무뇌아인 양 만들지 말고 말이다.

양선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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