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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잃은「신문학정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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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신문학 60년이라하여 금년들어 여러가지 행사들이많았다. 그것은 대견스럽다는 자축의 뜻도 있었을 것이다. 또는 그 동안의 한국문학 성장의 도정과 오늘의 모습에 대한 불안에서 새로운 정리의 계기를 찾자는 뜻도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지난달29일에 있었던 한국문인협회주최의「심포지엄」도「신문학 60년을 정리하는것」이라고 못박혀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무엇이, 우리나라의 오늘의문학이 왜 그이상도 그 이하도되지 못했는가를 밝혀주고 정리해 주지는 못했다.

<문학평론가> 홍사중
「근대문학성립기와 외국문학의영향」이라는 주제발표를 한 백철씨는 20년대를 설명하는 가운데서『이 상징파의 경우는 우리 신문학이 처음으로 외국문학의 영향을 받아서 생장한 첫번째의 발자취라고 볼수있다』고 지적하였다.
이것은 이당시의 문학사를 더듬는 모든사람에의해서 지금까지 수없이 지적된 사실이다. 문제는(적어도 이번 주제발표가 하나의 정리를 위한 것이었다면) 그것이 전통적인 시적 발상형식과 어떻게 달랐으며, 어떻게 양자가 상호작용을 일으켰는지 또는 그것이 어떻게 얼마나 큰영향을 미쳤으며 그공과는 어떠한지를밝히는데 있었을것이다.
그리고 단순히 <백조>파가「프랑스」상징주의의 입김을 받았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였는가를 제대로 밝혀내기 전에는 하나의 정리가 되지 못할것이다. 또 그것은 <백조>파의 과오를 40년이상이 지난 이제 또다시 반복하는 결과밖에 안되는 것이다.
백철씨의 발표중에서 또 하나 느껴진의문은 『본「텍스트」를 대상으로 하지않고 그영향 밑에서 쓰인 일본소설에서 자연주의를 배웠기때문에 그만큼 자연주의문학을 이해, 실천하는 데 있어서 거리도생기고 모순도갖게된줄안다』는데있다.
서구의자연주의문학과 이를본뜬 일본의 자연주의문학이 다르기때문에 일본의 자연주의문학을 본뜬 한국의 자연주의문학이 서구의 자연주의문학과 엄청난 거리를 갖게되지 않을수 없었다는 것은 지극히 논리적인 얘기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이른바 자연주의문학이 그처럼 서구적인 것과 모순되는 것이 되어버린 데는 단순히 그것이 간접수입이었기때문은 결코 아니다.
일본의 자연주의문학이 서구와 다른 모습을 띠게 된것은 일본의 독특한 문학적전통과 문화적풍토가달랐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것은 자연주의의 수입과 이식에 있어서의 일본작가들의자세가 틀렸기때문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필연적인 어쩔수없는것이었다고 봐야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국에있어서의 염상섭을 비롯한 이른바 자연주의파의 작품들이 서구의 그것과는 얼토당토 않은 것이었다면 그것은『중역이라도 서구의대표적인 자연주의 소설이 번역 소개되는 일』이 없었기때문만은 아니었다.
거기에는 자연주의와 나란히해서 사실주의며 낭만주의이며가 거의동시에 소개되었기때문에 빚어진 혼란의결과였다는것도 있다.
그리고 또『과학을 배웁시다』고 이광수가 외친지 불과 몇년도안된 우리나라에서「졸라」의 과학성이 제대로 인식될수는 도저히 없었다는점도 있었다.
다시 말해서 그당시의 한국의 특수한 상황들이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낳게 하고 「개성과 예술」이라는 낭만주의와 자연주의의 기묘하게 혼합된 문학론을 낳게했던것이다. 물론 자연주의문학을(백철씨의 말대로 간접수입이었기때문에)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나 제대로 이해할만한 능력이 없었다는점은 부정할수없다.
그러나 한국의 당시의 문학적 풍토뿐 아니라 정치적·사회적 상황이 그와같은 지극히 한국적인 자연주의를 낳게한 것이 아니었을까. 이것은모든「이즘」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얘기할수 있을것이라고 본다.
문학의 한국적 풍토에대하여 보다 깊은 검토가 있었던 것은 김동리씨의 주제발표였다. 동시에 보다큰 오류가 엿보인것도 동씨의 발표였다.
우선『근대소설은… 근대「유럽」의시민사회를무대로 하고 피어난 특수한 문화의 꽃이다』라는풀이에 의문이간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서구문학의 입장에서만 밝혀본 소설양식론이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에서만 볼때 우리나라의 문학이 서구적근대문학에 조금도 적응될 수 없음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의미에서 제대로 근대시민사회의 성립이 있기도전에 서구적 근대문학을 본뜨려 했던 초기의 한국작가들의 과오를 정확하게 지적했다고도 볼수는있다.
그러나 그것은 마치 소설양식이란, 도시 서구사회에만 있을수있는것이기때문에 한국문학이 세계문학으로 될수없을뿐만 아니라 소설그자체가 한국에서는적어도 지난60년동안에 자라날수없었다는 얘기로도 들리는것이다.
그것은 완전히 우리나라에 있어서의 근대문학을 한국의 문학전통으로부터 단절시켜버리는 것이며 여기또하나의 지난날의 작가들이 저질렀던 과오의 되풀이를 보게되는것이다.
이것은 김동리씨가 서구적근대문학과 한국문학과를 기독교와 유교, 개인주의와 개인주의,민주정치와봉건제도, 기계공업과 수공업등으로 대비시켜가며 그근본적 차이(?)를 밝힌데서도 나타나있다.
그렇다면 저물어가는 근대이전의 시대를 노래하기위해서「세르반테스」가쓴「돈·키호테」라든지 제대로근대시민사회가 확립되어있지 않았고 민주정치의 기틀이 잡히지도 않았던 18세기 독일에서「괴테」가 쓴작품을 어떻게 우리는 봐야하는지?
또는 지난 60년동안 우리나라작가들이 그런대로 키워나가고 또 키워나가려했던 문학이 무엇이었는지. 아니, 김동리씨 자신이 써온 작품들을 무엇이었다고 규정해야 옳으며 그기틀은 무엇이었는지 몹시 궁금해지는 것이다.
뭣인가 많은 착오가 있는것같다. 그렇게 밖에 보이지않는다. 신문학 60년의 기념행사들이 정말로 단순한 행사로 그치지않고 좀더 올바른 문제의식을, 그리고 좀더 진지한 토의를 서로 나누어 가며 참다운 정리에의 계기가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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