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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탈북자 압송 전격 작전 … 납북 일본인 아들 숨기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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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작년 크리스마스 이브 즐기던 탈북 청소년 9명 북한을 탈출해 중국에 체류하던 지난해 크리스마스 이브에 찍은 북한 청소년 9명의 사진. 휴대전화로 촬영했으며 신변 보호를 위해 얼굴을 가렸다. 이들의 한국행 시도를 도왔던 선교사는 사진 공개가 우리 사회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길 바란다고 밝혔다. [사진 MBC]
마쓰모토 교코

지난 28일 강제 북송된 탈북 청소년 9명 가운데 납북 일본인의 아들 문철(23)씨가 포함됐을 가능성이 30일 제기됐다. 동아일보는 이날 “한국 정부가 이런 첩보를 입수해 진위를 확인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 교도통신과 TV아사히 등은 동아일보가 이런 보도를 했다면서 문씨에 대해 “1977년 납북된 일본인 여성 마쓰모토 교코(松本京子)의 아들일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77년 당시 29세이던 마쓰모토는 돗토리(鳥取)현 요나고(米子)시 자택에서 뜨개질 학원을 가던 중 납치된 것으로 파악됐다. 일본이 ‘북한 당국에 의해 납치된 피해자 등 지원에 관한 법률’에서 납북자로 공식 지목한 17명 중 한 명이다.

 문씨가 마쓰모토의 아들일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는 북한의 이례적인 움직임 때문이다. 북한은 탈북 청소년 9명이 라오스에 억류되고 있는 동안 요원을 파견하고 친북 인사를 라오스 이민국 심사에 참여시켜 관련 정보까지 캐갔다고 한다. 지난 20∼24일에는 라오스 인민혁명당 중앙위원회 비서 등 라오스 대표단을 평양으로 초청해 탈북청소년 귀환에 대한 협조를 요청하기도 했다.

 탈북자를 북송하는 루트나 수단도 달랐다. 그동안에는 육로를 이용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으나 이번 경우엔 라오스 비엔티안→중국 쿤밍→중국 베이징→북한 평양으로 비행기를 세 차례나 갈아타면서 24시간 이내에 북송작전을 전격적으로 마무리했다. 탈북 청소년 9명에 대해 관용여권 소지자 등 다수의 인원을 붙여 철저히 감시하면서다. 뭔가 신속하게 사건을 처리해야 할 ‘불가피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그 불가피한 이유가 납북 일본인 문제가 국제사회로 비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가 아니냐는 게 일부 일본 언론의 주장이다.

  하지만 외교부는 아직까지 사실관계조차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이 이례적으로 움직인 정황은 많지만 문씨와 마쓰모토 간의 연관성을 입증할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조태영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북송된 탈북 고아 중 납북된 일본인의 아들이 포함됐느냐”는 질문에 “우리 정부가 아는 바는 없다”고 밝혔다. 또 다른 당국자도 “그런 소문은 들었지만 정확한 정보는 없다”고 했다.

 물론 문씨가 납북 일본인의 아들일 가능성이 낮다는 주장도 있다. 탈북 청소년 9명을 탈출시킨 선교사 주모씨와 긴밀히 연락해 온 정베드로 북한인권단체연합회 사무총장은 “주 선교사가 1년 이상 문씨를 데리고 있었는데도 납북 일본인의 자녀가 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며 “납북 일본인 자녀가 있었다면 일본 쪽을 통한 탈출 방법도 강구했을 텐데 그런 적이 전혀 없었다”고 전했다. 일본과 관련이 있었다면 당연히 중국 선양 주재 일본 대사관에 진입하거나 일본 측 외교관과의 접촉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했을 것이란 얘기다. 라오스 정부가 조사 과정에서 일본인 납치와 관련한 정황을 파악했다면 이를 무시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일본인 납북은 재일동포 북송사업 와중에서 불거졌다. 59년 시작된 북송사업으로 20여 년간 9만3000여 명이 북한으로 갔다. 이 중엔 일본인 처 1800여 명이 포함됐다고 한다. 이들은 97년부터 세 차례에 걸쳐 고향인 일본을 방문했으나 2002년 이후 일본인 납치 문제가 북·일 간 갈등 요소로 떠오르면서 중단됐다.

 익명을 원한 정부 관계자는 “이번 탈북 청소년들은 6개월에서 수년간 국경 근처에서 먹을 것 없이 떠돌던 이들로 북한 당국이 특별 관리하는 납북자일 가능성은 낮다”며 “ 문씨가 일본인의 자녀라고 해도 마쓰모토의 자녀가 아닌 다른 북송 일본인의 자녀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납치 일본인과 북송 일본인 처는 현격히 다르다”며 “탈북 청소년들이 라오스까지 탈북에 성공했던 사실을 감안하면 통제가 엄격할 납치 일본인의 아들일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일본은 관련 보도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TV아사히를 비롯한 일본 언론들은 관련 보도가 사실일 가능성에 주목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오전 브리핑에서 “관계국과 연결을 취하는 등 외교 루트를 통해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금 이 시점에서 (사실관계에 대해) 상세하게 답변드리기는 힘들다”면서 “어쨌든 정부로선 모든 납치 피해자의 생존을 전제로 정보를 수집 분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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