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양간 고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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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간밤에 도둑이 들었다. 1년전 큰마음먹고 장만한 소형 TV한대와 형님의 결혼기념 고급 팔목시계등이 가증스런 도둑의 손에의해 자취를 감추었다. 피해액은 줄잡아 7, 8만원…. 가뜩이나 생활고에 쪼들리는 형님의 초췌한 얼굴엔 고통을 이기지 못하여 잠시 핏기마져 사라졌다.
섭씨 32도를 오르내리는 날씨가 밤까지 그 기세를 몰고 오는듯 후텁지근 하여서 올들어 처음으로 방문을 활짝 열어놓았던 것이 탈이라면 탈. 어떤 방법을 사용했는지는 몰라도 잠귀가 어지간히 민감하다던 세식구가 아무런 기미도 느끼지 못한채 새벽녘에야 사실을 알고 허둥댔다.
훔치려는 놈 하나에 지키려는 열사람 못당한다지만 무더운 여름밤이라고 문단속의 방심은 매우 곤란하다.
방범대원이나 순경의 순찰에만 의존한다는 것도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각된다.
도둑의 소행이야 더할나위없이 증오스럽고 나쁘지만 도둑없는 밝은 사회에 대한 염원은 염원으로만 끝나야 할것인가? 『소잃고 외양간 고치기』라는 어리석음을 풍자한 이야기가 있긴 하지만 설사 나는 소를 잃었더라도 외양간은 철저하게 고쳐야겠다고 생각했다. 없어진 소를 또 장만하려는 끈질긴 노력과 함께 말이다. <정규택·25·서울 종로구 가회동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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