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 오후 3~6시가 두렵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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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원 최모(32·여)씨는 3월부터 경기도의 한 가정어린이집에 만 20개월 된 아들을 맡긴다. 퇴근이 늦어 오후 7시까지 아이를 맡기고 싶었다. 그러나 어린이집 원장이 “그때까지 남아 있는 애가 없다”며 “오후 5시 전에 애를 찾아가야 한다”고 했다. 친정부모와 시부모도 맞벌이라서 도움을 못 받는 상황이다. 어쩔 수 없이 보모를 고용했다. 보모가 오후 4시 전후에 아이를 데려와서 오후 7시 반 최씨가 퇴근할 때까지 돌본다. 서너 시간 돌봄 비용으로 월 70만~80만원이 나간다. 최씨는 “국가 보조금은 의미가 없다. 이것저것 따지면 직장생활하는 게 손해인 것 같다”고 말했다.

 올해부터 만 0~5세 전면 무상 보육이 시행되었지만 맞벌이부부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낮에 일하는 동안 어린이집이 아이를 맡아줘야 안심하고 일할 텐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오후 3~6시에 아이를 데려와야 한다. 일부 어린이집은 조기 귀가를 조건으로 아이를 받는다. 또 “애를 오래 두면 안 좋다” “남아 있는 애가 두세 명밖에 없다”며 압박한다. 어린이집은 오전 7시 반에 문을 열어 12시간 보육을 하게 돼 있지만 영·유아보육법상의 규정일 뿐이다.

 중앙일보는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는 수도권 맞벌이부부 30명과 보육 교사 10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30명 중 16명이 오후 3~6시 무렵에 아이를 데려오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로 아이 엄마의 친정부모나 시부모가 아이를 자기 집으로 데려오면 퇴근길에 엄마가 찾아온다. 여기에 적게는 30만원, 많게는 100만원 넘는 돈이 나간다. 50만원 안팎이 가장 많다. 숨어 있는 추가 보육 비용이다.

 정부는 지난 10일 보육실태조사 자료에서 국가 지원금 외 추가 부담(특별활동·재롱잔치 비용)이 평균 26만원이라고 했지만 조기 귀가 추가 비용을 더하면 부모 부담은 훨씬 늘어난다. 조기 귀가를 종용하거나 맞벌이부부의 아이를 차별하는 곳은 대부분 민간어린이집이다. 서울 노원구 김모(31·여·회사원)씨는 7개월 전 어린이집을 알아보다 “귀가 도우미(보모나 할머니)가 있느냐”는 원장의 전화를 받았다. 김씨가 “없다”고 했더니 “나중에 전화하겠다”고 해놓고 연락이 오지 않았다.

 직장어린이집은 사정이 반대다. 정부과천청사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는 김모(35·여)씨는 “오후 프로그램이 아주 좋아서 빠지면 다른 애한테 밀리는 것 같아 일찍 데려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울대 이봉주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우리 보육료 지원체계가 전업주부·맞벌이부부 차등을 두지 않는다. 이 때문에 어린이집이 맞벌이부부 아이들을 기피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며 “전업주부 지원을 일정 부분 축소하더라도 맞벌이부부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신성식 선임기자, 이지영·고성표·장주영·강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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