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맞벌이 자녀 기피 … "40곳서 거절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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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가 맞벌이 직장맘 30명과 보육교사 10명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 맞벌이 맘들은 어린이집을 구할 때부터 다양한 차별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터넷 육아카페 회원 20명을 취재한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경기도 분당에 사는 서희영(가명·31·무역회사 근무)씨는 육아에 전념하려고 일을 그만뒀다. 경제적으로 쪼들리는 와중에 괜찮은 일자리가 생겼고 석 달 전부터 다시 직장에 나갔다. 15개월 된 아이를 맡길 어린이집을 구하려고 연초부터 30군데 넘게 알아봤다. 직장이 서울인 탓에 서둘러도 오후 7시 반이 돼야 애를 데리러 갈 수 있다고 하자 대부분 늦어도 오후 6시까지는 와야 한다는 식으로 퇴짜를 놓거나 기피했다고 한다. 서씨는 “맞벌이 부부는 애 키우기가 정말 힘든 것 같다”고 말했다.

 22개월 된 딸을 키우는 은행원 권미영(가명·32)씨 역시 “어린이집 40군데서 거절당한 뒤 겨우 서초구의 민간 어린이집에 들어갔다”고 한숨을 쉬었다. 출근시간이 일러 오전 8시 이전에 아이를 맡기고 오후 7시 넘어야 찾아갈 수 있다고 했더니 여러 어린이집에서 난색을 표했다. 권씨가 항의했지만 일부 원장은 “규정과 현실은 다르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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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건복지부의 어린이집 실태조사(2012년)를 보면 민간 어린이집이 보육하는 아동 중 43.4%가 맞벌이 부부 자녀인 반면 국공립 어린이집은 54.7%다. 영·유아보육법에는 ‘부모가 모두 취업 중인 영·유아’에게 우선적으로 보육서비스를 제공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이런 규정을 지키지 않는 민간 어린이집이 적지 않다. 15개월 된 아이를 둔 한 워킹맘은 인터넷 사이트에 “맞벌이라고 써 냈을 때는 1년 넘게 연락이 없다가 직장을 옮기는 과정에서 잠깐 쉬는 동안 전업맘이라고 했더니 금세 연락이 왔다”고 말했다. 서울 노원구의 가정어린이집 보육교사인 윤미경(가명·52)씨는 “두세 자리가 빌 때가 있는데 직장맘 자녀가 문의하면 원장이 ‘빈자리가 없다’며 거부한다. 일찍 집으로 데려가는 아이를 고른다”고 털어놓았다.

 중앙일보 심층 인터뷰를 분석해 보니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어린이집을 구하기까지 1년 안팎 대기했거나 20~30군데를 수소문한 경우가 많았다. 보육 실태조사에 따르면 직장맘은 어린이집 대기기간이 6.9개월로 전업맘(6.2개월)보다 길다. 또 하루라도 빨리 어린이집을 구해야 하는 맞벌이 부부들은 대기기간이 긴 국공립 어린이집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서울 마포구 직장맘 박미영(가명·34·마트 계산원)씨는 임신 7개월부터 구립 어린이집에 신청을 했지만 대기순번이 1000번으로 밀려 있어 포기하고 민간 어린이집을 구했다.

 맞벌이 가정 아이의 보육 기피와 관련, 서울 송파구 민간 어린이집 최민희(가명·46·여) 원장은 “오후 3~4시에 아이를 찾아가든, 오후 7시 넘어 데려가든 지원되는 보조금은 같다”며 “보육교사의 입장에서 8시간 이상 근무하는 게 육체적·정신적으로 힘들다 보니 맞벌이 자녀를 기피하는 것은 인지상정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맞벌이 가정 자녀에 대해 입소 거부를 하다 적발되면 시정명령과 최대 6개월 운영정지 처분을 받는다. 하지만 서울 송파구청 관계자는 “어린이집에서 맘먹고 맞벌이 가정 자녀를 기피하려면 다양한 방식으로 피해 갈 수 있다”며 “현장 점검 나가 적발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신성식 선임기자, 이지영·고성표·장주영·강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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