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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 관계와 대화의 한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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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국리와 친선도모>일본과의 이웃 관계를 조정해 나가기 위해서 한국과 일본의 두 나라 국회의원들 유지간에 간담의 형식으로 정기적 화합을 가진다는 일은 있을 수 있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모임은 두 나라의 국회의원들이 다 제각기 자기네 국가이익을 도모하면서 이웃 관계를 원만히 꾸려나가자는 명분을 가진 것 인만큼 그 회합에서 어떤 이야기가 있었느냐 하는 것은 언제나 두 나라 국민 앞에 공개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저번 간담회는 지난 8일 서울에서 열렸었다는 것인데 뒤늦게나마 그 간담회 석상에서 의견교환 된 이야기라고 하여 지난 18일 우리측 공화당 국회의원 중 한사람의 이야기로 신문에 전하는바에 의하면 미·일 안전보장조약(미·일 안보조약)이 오는 1970년에 폐지된다면 현재의 일본「오끼나와」 의 미국 군사기지가 철수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니. 그때에 「오끼나와」 의 미군기지를 우리 나라 제주도로 옮긴다면 어떻겠느냐 하는 이야기가 나와서 두 나라 국회의원들이 다 『좋을 것』이라고 찬성했다 고 한다.
이런 이야기가「한·일 국회의원 간담회라는 자리에서 족히 있을 수 있겠느냐 하는 것부터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고, 또 누구로부터 그런 이야기가 비롯한 것이었는지도 알고 싶다. 이야기인즉 약간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한·일 국회의원들의 간담회라면 이야기의 주제는 스스로 한계가 없을 수 없을 것이다. 더구나 한국의 국회의원이라는 입장에서 미국과 일본의 남의 집 살림에 왜 군소리를 하여야 하겠는가하는 점이다. 먼저 「오끼나와」 의 미군기지가 왜 생겼으며 그 군사적 의의가 오늘 어떤 것이며 일본사람들의 「오끼나와」 반환운동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를 생각할 수 있다면, 한국 국회의원의 입장에서는 결코 일본사람들의 장단을 맞출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의 극동지역에 가진 가장 중요한 군사기지이며 또 한국의 방위와 깊은 관계를 가진「오끼나와」기지에 대한 일본의「반환」 아닌 미군 「축출」 운동에 말을 돕는 것 같은 이야기란 하등의 필요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일본의 국수주의
「오끼나와」 는 세상이 다 알다시피 태평양전쟁 중 「유황도」 와 더불어 일본군의 최후의 방위요새였던 곳이고, 미국으로서는 일본 본토 공격의 최후공략 목표이었다. 일본의 무조건 항복 직전까지의 처참한 전쟁터이다. 그후 일본을 점령한 미군이. 다시 새로이 구축한 「오끼나와」 의 군사기지는 그 목적과 성격의 중대함을 다시 발견케 된 것이다.
서남태평양상의 「괌」 동이 극동방위의 전략적기지라면「오끼나와」는 대소(대소)작전상 가장 중요한 전초기지로서 대소 관계의 긴장상태가 계속되는 한 미국의 항구적인 동북 「아시아」 방위의 군사기지가 아니 될 수 없으리라는 것은 비단 미국 측의 전략에서만 필요가 인정되고있는 것이 아니고. 한국·대만·월남 등등 또 일본으로서도 당연히 그 필요를 인정치 않을 수 없는 성질의 것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패전 후 미국의 큰 도움으로 부흥을 도모하는 중에 한국의 6·25전쟁이 세계적 규모로 발전하는 .기회를 타서 급작스러운 경제부흥을 보게 되고 그리고 그와 거의 동시에 연합국의 관대한 대일 강화조약의 혜택을 입어 독립을 회복하자, 점차로 연합군 점령군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점령군에 대한 반감은 공산당도 사회당도 보수정당도 마찬가지로 국수주의적 경향을 가지고 패전에 대한 울분을 반영 반미 운동에 쏟아 놓아온 것이 오늘까지의 실정인 것이다.
그런 가운데 작년에는 일본의「사또」 수상이 「워싱턴」 을 방문하여「존슨」 대통령이 「유황도」 의 행정권을 일본정부에 옮겨준다고 했다. 그때 일본은 자못 떠들썩했다. 「오끼나와」의 반환 이야기가 어째서 추진되지 않았던가 고 일본사람들은 떠들썩했다. 지금 일본은 지난 반세기 동안의 침략, 특히 저들의 소위「대동아 전쟁」때의 저지른 죄업은 지금쯤 거의 깨끗이 잊어버린 셈으로 되어있다.
미·일 안보조약에 의한 미군의 일본주둔과 일본에 미군이 군사기지를 가치는 일은 연합국의 대일 강화조약과 병행하여 패전국으로서 지켜야할 조약의무의 보장을 뜻하는 것이고 동시에 북으로 소련의 책략이 있을 수 있는 심각한 경우를 가장한 극동방위상 절대 필요하다는 전제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는 패전국의 의무로서만이 아니고 민주주의 국가가 되어야할 일본으로서도 전략상 절대 필요한 일이었음은 더 말할 나위 없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소련의 공군과 함대가 척수를 헤아리기 어려운 다수한 잠수함을 거느리고 한국의 동해와 서해 그리고 남쪽으로 무시 출몰하고 있는 이때에 미국이 「오끼나와」 기지를 어쩌자고 만만히 내놓으려고 할 것인가. 이런 경우에 한국 국회의원들이 일본 국회의원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여 찬동했다는 것은 결코 한국 측 체면을 유리한 편으로 끌어가는 이야기는 될 수 없을 것이다.
장래의 극동방위
1970년에 가서 미·일 안보조약의 기간이 끝나는 것은 사실이다. 그때 가서 다시 조약의 효력기간이 연장될 것이냐, 폐기될 것이냐는 지금 알 수 없다. 그러나 일본내의 움직임은 조약폐기를 주장하는 세력이 대단하여 어떤 커다란 풍파가 일어날 것만은 짐작할 수 있다. 그때를 노리고 소련·중공이, 또 북한 괴뢰도 어떤 중대한 책동을 할 것이다.
물론 미국으로서도 어떤 새 방안을 가지고 극동의 태평양 연안 여러 우방들과 긴밀한 접촉을 벌써부터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일본도 그때에 가서는 막연한 반미 감정만으로 만이 아니고, 공산당과 사회당 좌파들의 움직임에 대한 보수세력의 태도를 좀 더 선명히 함으로써 극동방위와 자신의 안전을 위한 정책을 확고히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만일 미·일 안전보장 조약이 폐기되고 미군이「오끼나와」의 미군기지를 철수치 않을 수 없는 경우에 맞닥뜨린다면 그때의 문제는「오끼나와」의 미군기지를 제주도로 옮기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닌, 더 중대한 방위상의 문제가 한국에 부닥쳐 올 것도 생각하여야 할는지 모른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미국의 극동방위 전선에 또는 미·일 관계에 새로운 사태가 벌어질지 모른다고 생각되는 점이 없지 앉을 것이다. 지금 이때는 한국사람으로서 미군의 「오끼나와」 기지 철수 운운은 전혀 이야기할 때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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