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의 편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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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라디오」에 귀를 기울여 가슴으로 흐느끼는「마하리아·잭슨」의 어두운「서머타임」을 듣고 있었다.『편지요. 미납입니다』 -민망한 표정까지 짓는 우체부에게 요금을 물고 발신인을 보았다. 대개의 미납 편지가 그렇듯 이름이 없이「친구」로부터다.「친구?」겉봉을 뜯은 나는 그만 쓰디쓴 웃음을 웃고 말았다.
○… 『이 행운의 편지는 72시간 내에 존경하는 사람 친척 친구에게 전하는…』
「아프리카」의 한 장교가 시작했다는 행운의 편지의 역사에서「나폴레옹」의 불란서혁명,「케네디」 의 암살등 세기의 인물들을 등장시켜 만일 72시간 내에 9통의 편지를 돌리지 않으면 커다만 액운을 면치 못하리라는 공갈조의 행운 8백50번. 지독한 「샤머니스트」라고 때로 친구의 빈축을 사기도한 내가 오늘 행운의 편지 앞에 어쩔 수 없이 느끼는 불쾌감.
○…미납 탓일까. 굳이 그 때문만은 아니다. 만일 억지가 아니라면 세상을 재는 자 (尺)는 나 자신이 아닐까?
나의 불쾌감은 곧 아홉 통의 행운의 미납편지를 받아야할 사람들의 것으로 번져갈 것이다.
나의 행운을 아홉 사람의 불쾌감과 바꾸자 생각하며 나는 행운의 편지를 태우기 시작했다. <오복례·충남 장항읍 화천동1구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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