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휴전성립|로버트·엘리갠트기자(INS)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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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53년6월중순전쟁에폐허가 되다시피한 서울의 날씨는 몹시 무더웠다.
「유엔」군사령부와 공산측의 휴전회담이 새로운위기의 순간에 직면해감에따라 판문점에서는 무슨큰일이라도 벌어질듯했다. 그러나 서울의 날씨는 몹시 더운탓인지4월(53년)에 평화회담이 재개되었을 때 서울땅을 밟은 고참특파원중 몇사람밖에는 서울의 기자숙소에 남아있지않았다.
고참특파원들이 일본에서 가정생활의 기쁨에빠져있거나 임시홀아비생활을 즐기고 있는동안 신참특파원들은 서울에남아 평화회담이 어떻게되어갈것인가하고 주시하고있었다.
고참기자들은 사태의심각성을 시인하면서도 회담의 「클라이맥스」가 눈앞에 보이면 서울로 곧 달려올수있는 시간여유는 있다는 배짱이었다.
그때로봐서는 협상진행 경과에관한 정보를 얻는 일반적인 길은 공산측방송과 「유엔」군사령부의공보장교를 통하는 두가지 길뿐이었다.
그러나 우연은 예상을 뒤집어엎는 수가 없지않아있다. INS통신이 한국전쟁종결에관한 특종기사를 손에 넣은것도 따지고보면 우연이라고나할까.
얼마전까지만해도 INS극동지국장 「하워드·핸들맨」씨는 한국전의 마지막 부분을「커버」하고있는 INS취재반을 지휘하기위해 다시 극동으로 돌아왔는데 동경으로가지않고 서울에 남아있기로했다.
한국측협상대표 최덕신소장의 보좌관인 모대위와 INS 「존·캐설리」기자는 우정이 매우 두터운 술친구였다.
한국정부는 최대표에게 휴전회담에 반대하도록 명령을내리고있었으나 최장군은 시간마다 회담경과를보고받아 알고있었다. 본기자와 당시의 한국의 외무장관겸총리서리 변영태씨와의 사이는 경쟁사인UP통신이변장관을 『INS의통신원』이라고 꼬집을만큼 가까웠다. 말하자면 INS로서는 타사에 비해 유리한정보망을 갖고있었으며 「팀·워크」가 잘 짜여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정보원도 6월의 그날밤중에는 그리 대소롭지않은것같았다. 「핸들맨」기자는 옆방에서 「포커」놀이를하고있었으며 본기자는 별로 재미없는 해설기사를 쓰고 있었다. 「캐설리」기자는 어디론지 사라졌고 그가 곤드레가 되어 방에 들어왔을 때 본 기자는 「타이프」위로 힐끗 그를 쳐다보았다. 「캐설리」는 조금 앉았더니 『만사는 끝이야, 오대위가 말했어』라는 수수께끼와같은 한마디를뱉고는 쓰러져 버렸다. 나는 곧 「핸들맨」에게 연락, 술에 곤드레가된 「캐설리」를두드려 깨워서 간신히 대위가 휴전이 성립단계에 있다는 것을 말하더라는것을 알아냈다. 나는 우선 제1신을「뉴요크」에 보내고 즉시 변외무를 만나 확인하고 상보를보내 타사보다 10시간을 앞질렀던것이다.
◇주=INS통신은1957년에 UP통신에 흡수되어 현재 UPI로불리고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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