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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안가르고 구멍 5개 내 위암수술… '4300례' 세계 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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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식 교수(왼쪽 2번째)팀이 환자의 복부에 5군데 구멍을 내고 수술기구를 넣고 있다. 체내에서 위를 모두 제거한 후 식도와 소장을 연결하고 있다. [김수정 기자]

친구들과의 저녁모임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 박영철(54)씨. 놀랍게도 그의 위는 97%가 없다. 작년 4월, 위암 판정을 받은 후 서울아산병원에서 위를 잘라내는 ‘복강경 수술’을 받았다. 복강경 수술은 배를 20~30㎝ 절개하는 개복수술과 다르다. 작은 구멍 5개를 내어 수술기구를 넣고 암덩어리를 잘라 빼낸다. 수술 흉터가 거의 남지 않는다. 복강경수술은 이미 많은 병원에서 한다. 그중 ‘체내문합술(잘라내고 남은 장기를 꺼내지 않고 체내에서 이어주는 수술법)’을 함께 하는 병원은 4곳 뿐. 그중에서도 복강경수술 4300례, 완치율 95%의 세계 최다 실적을 보유한 최강 의료진은 바로 서울아산병원 김병식 교수팀이다. JTBC와 중앙일보는 세계 최고 수준의 실력을 갖춘 의료팀을 소개하는 리얼 의학다큐멘터리 ‘레전드 오브 닥터스’를 제작했다. 세계 최강 김 교수팀의 위암 복강경수술에 대한 생생한 수술현장은 26일 저녁 9시 55분에 방영된다.

가늘고 긴 수술도구·카메라 넣어 진행

경남 진주에 사는 박민호(가명·68)씨는 3월 말 건강검진을 통해 위암 통보를 받았다. 위 뒷벽 상부 점막층까지 암 세포가 침범한 조기 위암이었다. 당초 박씨는 의사로부터 위를 모두 절제하는 개복수술을 권유 받았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수술 시 복부를 절개한 흉터가 지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위 전체를 잘라내므로 음식물 섭취도 힘들 것이라는 설명도 들었다. 수소문 끝에 박씨는 서울아산병원 상부위장관외과 김병식 교수팀을 찾았다. 김 교수는 ‘복강경 수술’ 및 ‘체내문합술’을 하기로 결정했다. 체내문합술이란, 암덩어리를 잘라내고 남은 위를 장과 연결할 때 장기를 몸밖으로 꺼내지 않고 체내에서 봉합하는 수술을 말한다. 단, 위를 100% 절제(위전절제술)했다면 식도와 장을 바로 연결한다.

지난달 17일 오전 11시. 김 교수가 수술실에 들어선다. 수술은 복강경 기구를 체내에 집어넣기 위한 구멍을 5개 뚫는 것부터 시작한다. 복부 양옆에 지름 5㎜ 및 12㎜를 하나씩 절개해 구멍 4개를 만든다. 이 4개의 구멍은 ‘복강경 투관침’이라는 가늘고 긴 수술도구들을 넣는 통로가 된다. 배꼽 주위엔 지름 12㎜의 구멍 하나를 낸다. 이곳에 카메라가 부착된 복강경 기구를 넣는다. 배 안의 영상이 그대로 외부 모니터로 전송된다. 구멍을 다 뚫으면 인체에 무해한 이산화탄소 가스를 복부에 주입한다. 배가 빵빵하게 부풀어오른다. 이는 수술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시야를 확보할 수 있도록 간을 들어올려 실로 묶는다.

남겨진 위와 소장을 체내서 연결

김 교수팀를 포함한 의료진 5명이 모니터를 보며 집도를 시작했다. 마치 기다란 총을 조종하듯 ‘찰칵’하고 방아쇠를 당기면 수술도구 끝부분의 각도가 360° 회전한다. 구멍 밖에서도 장기를 잘라내고 묶을 수 있는 이유다. 수술팀은 구멍에 자동봉합기를 넣은 후 십이지장과 위가 이어진 부분을 절제했다. 림프절도 잘랐다. 자동봉합기는 장기를 잘라냄과 동시에 봉합까지 한다. 암세포가 자란 부위를 찾았다. 위 95%를 잘라냈다. 실제 암 크기보다 많은 부위를 잘라내는데, 암이 위벽을 따라 퍼져나가 재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잘려나온 위는 배 안에서 비닐 팩에 담는다. 구멍을 통해 암세포가 든 위 일부가 ‘뽕’ 하고 튀어나왔다. 위에서 남아있는 조직과 경계부위의 위 조직을 일부 절제해 조직검사를 맡긴다. 암이 남아있을 가능성을 파악하는 것이다. 전이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제 봉합(문합) 단계가 시작된다. 남겨진 위 5%와 소장을 연결하는 작업이다. ‘복강경 직선형 자동봉합기’라는 기구를 이용해 장기를 굳이 밖으로 빼지 않고도 체내에서 봉합한다. ‘체내문합술’은 ‘체외문합술’과 달리 장기를 빼기 위한 5㎝의 절개도, 장기 노출로 인한 세균 감염 우려도 필요 없다. 수술을 마무리할 무렵 이산화탄소 가스를 뺀다. “수고했어요”라는 김 교수의 말과 함께 약 160분의 수술이 무사히 끝났다.

수술 후 흉터 거의 없고 곧바로 걸을 수 있어

깨어난 박씨는 자신의 배를 보고 깜짝 놀랐다. 수술 흉터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큰 통증도 없어 곧바로 걸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식사 시 큰 어려움을 느낄 수 없었다. 위를 100% 절개했다면 삼킴곤란·음식물 및 위산역류 현상 등으로 고생했을 게 뻔했다. 박씨의 ‘하부식도괄약근’을 제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씨는 암이 위 상부에 있었다. 위 전체를 잘라내는 수술 대상자였다. 하지만 김 교수팀은 위를 5% 정도 남기는 수술에 도전했다. 위 5%를 남겨놓은 이유는 따로 있다. 김 교수는 “위―식도 경계부 바로 밑에 암이 위치한 경우만 아니라면 굳이 위를 100% 잘라내는 수술(위전절제술)을 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하부식도괄약근이 있느냐 없느냐는 하늘과 땅 차이”라고 강조했다.

 위 상부쪽 암 병변을 깨끗이 제거하면서 위를 살짝 남겨 잘라내는 수술은 고도의 기술을 요한다. 김 교수는 “수술 후 환자가 건강을 되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삶의 질에도 초점을 맞췄다”며 “어렵지만 하부식도괄약근을 최대한 살리려는 이유”라고 답했다. 박씨는 수술 8일 후 합병증 없이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했다.

글=정심교 기자
사진=김수정 기자

◆복강경 위암 수술 가능범위는=김병식 교수팀은 위벽의 5개층(점막층·점막하층·근육층·장막하층·장막층) 가운데 점막과 점막하층의 2개층까지 암이 침범한 조기 위암 환자에게 원칙적으로 체내문합술을 적용한 복강경 위암 수술을 시행하고 있다. 경우에 따라 진행성 위암 환자에게도 선별적으로 수술한다.

◆체내문합술=장기를 자르고 연결하는 모든 수술 과정을 뱃속에서 마친다. 복부를 절개할 필요가 없다.

◆체외문합술=장기를 배 밖으로 꺼내 이어준다. 복부에 5~6㎝의 작은 절개창을 만들므로 흉터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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