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제국의 부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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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제국

1983년생 동기의 맞대결이 발표된 지난 15일 밤. 김진우(30·KIA)는 친구 류제국(30·LG)에게 전화를 걸었다. “너 왜 하필 나 등판 때 올라오는 거냐. 괜히 너랑 엮여서 지면 어떻게 하라고.” 김진우의 앓는 소리에 류제국도 볼멘소리를 했다. “나라고 너랑 그렇게 빨리 붙을 줄 알았겠나. 오늘 ‘일요일에 김진우가 나온다니까, 너도 그때 나가라’고 들었다”고.

 속마음은 달랐다. 두 사람이 나란히 선발 예고된 19일은 비 예보가 있었다. 지난 17일 야구장에서 만난 김진우는 “비가 안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류제국 역시 “진우와 맞붙는 것보다 내 한국 프로야구 데뷔전이란 게 더 중요하다. 피할 생각이 없다”고 맞받았다.

 두 사람은 고교 시절 ‘에이스’이자 라이벌이었다. 류제국(덕수고)과 김진우(광주진흥고)는 2000년 봉황기 결승에서 처음 만났다. 광주진흥고가 6-0 완승을 거뒀고 김진우가 승리를 챙겼다. 하지만 이듬해 열린 청룡기 결승전에서는 류제국이 삼진 12개를 잡으며 최우수선수(MVP)가 됐다.

 친구이자 라이벌이 펼친 12년 만의 프로 맞대결. 류제국이 5와3분의1이닝을 5피안타 2피홈런 4실점하며 한국 데뷔 첫 경기에서 승리를 거뒀다. 류제국은 메이저리그 시카고 컵스 산하 더블A에서 뛰던 2003년 훈련 도중 물수리를 야구공으로 맞혀 100시간의 사회봉사 처분을 받은 적이 있다. 치기 어린 스무 살 무렵 “할 수 있으면 한 번 맞혀 보라”는 부추김을 받자 승부욕을 이기지 못하고 저지른 실수였다. 서른 살이 된 류제국의 ‘파이터’ 기질은 공에만 남았다.

  류제국은 1회 선두타자 이용규에게 던진 초구 투심을 제외하고 모두 직구로 승부를 걸었다. 6구까지 가는 접전 끝에 시속 145㎞ 낮은 직구로 이용규를 내야 플라이로 잡아냈다. 류제국은 김선빈에게도 낮은 직구로 우익수 뜬공을 유도했다. 앞선 두 타자에게 직구로 승부를 걸었던 것과 달리 김원섭에게는 5구째 시속 128㎞짜리 높은 체인지업을 던져 2루 땅볼로 돌려세웠다.

 위기에서는 유연하게 대처했다. 4회 1사 1·2루에서 상대는 최근 쾌조의 타격감을 자랑하는 이범호. 류제국은 이범호에게 5구째 시속 122㎞ 체인지업을 던져 병살타를 이끌어냈다. 비록 6회 1사에서 나지완에게 중월 투런 홈런을 맞고 마운드를 내려왔지만 성공적인 데뷔였다.

 타선 지원도 받았다. LG의 맏형 이병규(등번호 9번)는 주자가 있을 때마다 또박또박 적시타를 때렸다. LG는 5회 대거 5점을 몰아쳐 7-4로 승리했다.

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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