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미스터리 진실공방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은 11일 기자회견을 열고 성추행 의혹에 대해 해명했다. 하지만 의혹은 오히려 증폭됐다. 성추행 여부뿐 아니라 윤 전 대변인이 워싱턴에서 급거 귀국한 게 자신의 판단에 따른 도피인지, 청와대 지시에 따른 귀국 종용인지 논란이 일면서 청와대와 윤 전 대변인 사이의 진실공방으로 번지고 있다. 청와대 방미 수행단과 민정수석실, 여성 인턴의 진술을 토대로 한 경찰 보고서, 윤 전 대변인의 회견 발언을 종합해 의혹과 쟁점을 정리했다.

 ◆중도 귀국, 비행기표 누가 예약=방미 수행단에 포함됐던 청와대 행정관에 따르면 수행단이 워싱턴 에서 사건을 파악한 시간은 8일 오전 7시쯤(현지시간)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미 의회 연설을 앞두고 있을 때다. 이남기 홍보수석은 “차량을 기다리면서 윤창중씨를 불러서 사실이냐고 물었다. 시간이 워낙 급해 전광삼 국장과 상의해서 결정해줬으면 좋겠다고 얘기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윤 전 대변인은 11일 회견에서 “이남기 홍보수석이 ‘빨리 워싱턴을 떠나서 한국으로 돌아가야 되겠다’고 말했다”며 이 수석이 귀국을 종용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 수석이 ‘비행기를 예약해놨으니 짐을 찾아서 나가라’고 했다”고 덧붙였다.

 반면에 이 수석은 윤 전 대변인의 기자회견 후 브리핑에서 “그렇게 얘기한 적이 없다. 행정관과 상의해서 결정해줬으면 좋겠다고 얘기했다”며 “나는 (표를) 예약한 사실이 없다”고 했다. 전광삼 선임행정관은 “확인해 보니 표가 예약된 시간이 오전 6시52분”이라며 “우리가 사건을 안 게 7시 이후인데 어떻게 예약을 해줄 수 있느냐”고 부인했다. 그는 “현지에서 조사받는 방법이 있고 한국에 귀국해서 조사받을 수도 있으니 선택을 하라고 말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윤 전 대변인이 8일 오후 1시 35분(현지시간) 덜레스 국제공항에서 인천공항행 KE 094편 비즈니스 좌석을 타고 ‘나 홀로 귀국’하는 과정에서 ▶누가 언제 비행기를 예약했는지 ▶단체로 보관하고 있던 여권을 누구의 지시로 윤 전 대변인에게 건네줬는지는 향후 조사 과정에서 밝혀져야 할 대목이다. 결과가 나오면 윤 전 대변인이 경찰이 옥죄어 오는 상황을 감지해 귀국할 준비를 미리 해놓고 거짓말을 한 것인지, 청와대가 애초 상황 파악 시점을 몇 시간 뒤로 조작한 것인지가 가려질 전망이다.

 ◆사건 날 밤 호텔 돌아와 잔 게 맞나=성추행 여부를 가리기 위해선 7일 밤 W호텔 술자리와 8일 오전 6시쯤 페어팩스 호텔의 윤 전 대변인의 방에서 일어난 일들의 실타래를 푸는 게 중요하다. 당초 호텔 바 술자리에는 윤 전 대변인과 여성 인턴, 두 사람만이 함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윤 전 대변인은 “순간 드는 생각이 ‘여성 가이드(인턴)이기 때문에 운전기사가 처음부터 끝까지 동석해야 한다’였다”며 “30여분 동안 (3명이) 아주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고 주장했다. 진상을 조사한 주미 대사관 측도 “운전기사가 간 것은 맞다”고 인정했다. 다만 “중간중간 운전기사가 (술자리를) 나오고 들어가고 하는 상황도 있을 수 있다”며 “처음부터 끝까지 3명이 같이 있었다고 할 수는 없다”는 단서를 붙였다.

 성추행 여부를 가릴 결정적 열쇠는 윤 전 대변인이 술자리에서 돌아와 숙소인 페어팩스 호텔에서 보인 행적이다. 윤 전 대변인은 11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밤 11시에 잠자리 들어서 다음날 아침에 깼다”고 밝혔다. 그러나 복수의 수행단 관계자와 기자들에 따르면 윤 전 대변인은 술에 취한 상태로 8일 새벽 호텔을 돌아다녔다고 한다. 목격자가 많다는 점에서 윤 전 대변인의 해명은 거짓일 가능성이 크다. 곽상도 민정수석은 “(성추행 사실의) 법적인 평가는 이미 했고 본인을 문책해서 경질됐다”고 밝혔다.

 ◆뉴욕서도 “가운만 걸친 채” 인턴 맞아=윤 전 대변인은 기자회견에서 뉴욕에서의 또 다른 여성 인턴 성추행 시도 의혹에 대해 “마치 상습범이라고 마녀사냥식으로 하는 것에 대해 저는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며 부인했다. 하지만 뉴욕 영사관 관계자는 “윤 전 대변인이 지난 5일 뉴욕의 호텔 숙소에서 한 인턴에게 술을 시켜달라고 했고 여성이 술을 시켜주러 방에 갔더니 당시 윤 전 대변인이 가운만 걸친 상태였다고 한다”며 “인턴이 곧바로 나가려고 하니 ‘그냥 가려고?’라고 해서 ‘별 이상한 사람 다 있네’라고 생각하고 서둘러 방을 나왔다고 한다”고 전했다.  

허진 기자

관련기사

첫 신고자는 인턴 룸메이트…돌연 사직, 왜?
윤 "욕설한 적 없다"…행정관 "욕 들은 사람 150명은…"
'윤창중 사건' 미시USA에 첫 폭로한 사람은
"대통령 잘못도 뒤집어쓸 비서가…" 책임 회피 논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