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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욕 안 해, 그런 인간 아니다" 청와대 "거짓말 너무 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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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이 11일 서울 부암동 AW컨벤션센터에서 기자회견을 마치고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윤 전 대변인은 회견 이후 다시 잠적했다. [김성룡 기자]
강태화
정치국제부문 기자

11일 오전 서울 시내 한 음식점에서 가진 윤창중 전 대변인의 기자회견장엔 청와대 관계자가 없었다. 허태열 비서실장이 “직원을 한 명도 보내서는 안 된다”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윤 전 대변인과 ‘엮이면’ 안 된다는 취지다.

 TV로 회견을 지켜본 한 비서관은 “자숙하고 있어도 모자랄 사람이 왜 저러고 있느냐”고 말했다. 다른 선임행정관은 “솔직히 저분 그만둔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느냐”고 했다.

 윤 전 대변인이 기자회견에서 한 말 하나하나가 비판의 대상이 됐다. 그는 회견에서 “욕설을 하거나 심한 표현을 사용한 적이 없다. 저는 그런 인간이 아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청와대 한 행정관은 “당장이라도 윤 전 대변인에게 욕을 들은 사람 150명은 불러모을 수 있다”며 “거짓말을 해도 너무 많이 한다”고 말했다. 기자들 중에서도 “내 핸드폰에도 윤 전 대변인의 욕설이 녹취돼 있다”고 말하는 이가 있었다. 다른 관계자는 “대변인이 자기 살겠다고 기자회견까지 열어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이는 비겁하다 못해 비열하다”고도 했다.

 윤 전 대변인은 인수위 때부터 “특종도 낙종도 없도록 하겠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대변인으로서의 원칙이었지만 실상은 ‘불통’이었다. 윤 전 대변인은 인선 봉투를 테이프로 붙이는 연출을 통해 ‘밀봉인사’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고, 브리핑 때도 자신이 필요한 말 외에는 질문도 잘 받지 않았다. 아예 “브리핑은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거나 “공식 브리핑 그대로입니다”라며 배경 설명을 생략했었다.

 이런 윤 전 대변인의 불통 행보는 11일의 해명 기자회견장에서도 재연됐다. 그는 자신의 성추행설을 전면 부인하기 위해 장황한 설명을 했다.“국민 여러분께 머리 숙여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며 “박근혜 대통령의 성공적 정상회담에 누를 끼친 점 깊이 사죄한다. 앞으로 애국심을 갖고 살아가겠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러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미국으로 가서 조사를 받을 용의가 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이 이어지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되돌아서서 회견장을 떠났다. 평소 불친절한 브리핑 때와 똑같은 모습이었다.

 앞서 ‘불통’은 방미 때도 논란이 됐다. 대변인은 순방 중 기자단과 긴밀하게 협의하고 움직여야 한다. 하지만 성추행 사건이 발생한 당일에도 그는 인턴 여직원과 술을 마셨다. 청와대의 한 비서관은 “국익이 달린 중요한 행사를 앞두고 만취했다는 것도 말이 안 될뿐더러, 그 시간에 인턴과 기사를 데리고 술을 마셨다는 것 자체가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여야 정치권은 윤 전 대변인에 대해 ‘조속히 미국으로 가 조사를 받으라’고 일제히 촉구했다. 새누리당 차기 원내대표 경선에 출마한 최경환 의원은 “윤 전 대변인이 그렇게 떳떳하다면 미국 현지에 가서 조사를 받으면 된다”고 말했다. 이주영 의원 역시 “(피해 여성인) 인턴은 상당히 우수한 인력인데 터무니없이 덮어씌우려고 했겠느냐”며 윤 전 대변인이 미국에 가서 직접 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이언주 원내대변인은 11일 논평을 통해 “윤 전 대변인이 자신의 말대로 아무 잘못이 없다면 미국 경찰의 조사를 성실히 받겠다고 하면 될 터인데, 미주알고주알 무슨 변명이 그렇게 많은가”라고 질타했다.

 윤 전 대변인 입장에선 나름대로 성추행 의혹에 대해 억울한 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회견을 다 지켜본 뒤 남은 모습은 자신이 몸담았던 청와대가 곤경에 빠지는 건 아랑곳하지 않고 당장의 위기만 모면하고 보겠다는 인상이 더 강해 보여 씁쓸했다.

글=강태화 정치국제부문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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