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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그 때 학생들은 여교수의 그 추억을 그림처럼 동경했고, 술과 담배까지 선망하고, 서울의 통금시간을 원망했다. 불과 몇해전이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철없는 일이었다.
통금시간이 없으면 얼마나 많은시간과 경제가가정의 울타리 밖에서 낭비되고 얼마나 많은 여성과 또 철없는 아들 딸을 가진 부모들이 애를 태울까. 통금완전 철폐론이 나올적마다 세찬반대론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알수없는일이 요즈음 생겼다. 통금 철폐를 원치 않으면서도 통금시간이 두시간 연장된 사흘동안이 퍽못 마땅했다. 저녁 여서 일곱시쯤 어깨를 늘어뜨리고 돌아오는 남자들의 모습이 우울해 보인것이다. 「게릴라」사건때문에 위축된 것만은 아닌것같다. 시간의 철책에 속박되었음이 너무나 역력하다.
통금시간이 밤10시부터로 앞당겨져 울상이된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영업이 제대로 안된 사람. 약주를 마음놓고 못마신 사람들. 그리고 그보다 더많은수의 아내와 어머니들은 통금의 연장을 다행스럽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다행스러움이「강제된시간」때문이라는데에 약간의 불만이있다.
작년「크리스머스·이브」는 재작년보다 조용했고 금년「크리스머스·이브」는 작년보다 조용했다는 신문기사를 읽고 그래도 제대로 돌아가는 구석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통금시간이 앞당겨진다고해서 울상이 되고, 또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우울해 하는 것은 무엇인가 잘못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이든다. 통금제도가 완전히 철폐되어도 여성들이 두려워하지않고 통금시간이 앞당겨져도 남성들이 움츠러들지않을수 없을까. 「자유속의무절제」도「제약속의질서」도 달갑지않기 때문이다. 통금시간이 다시 환원되었다. 섭섭하기도하고 시원한것같기도하고…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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