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對北송금 각계 시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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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송금 의혹 사건을 둘러싼 정치권의 대립이 격화되는 가운데 대통령의 통치행위를 인정하느냐가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

청와대 측이 이 문제에 대해 통치행위임을 들어 "사법 심사는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표명한 데 이어 노무현 당선자 측의 문희상(文喜相)청와대 비서실장내정자가 "통치행위라면 이 사건을 미주알고주알 캐선 안된다"고 거들고 나섰기 때문이다.

盧당선자 측이 검찰의 철저한 수사라는 기존 해법에서 선회해 정치적 해결이라는 새 해법을 들고나온 것도 '대북 송금=통치행위'란 등식을 바탕에 깔고 있다.

이에 대해 율사 출신인 한나라당 박희태(朴熺太)대표 권한대행은 "통치행위 주장은 왕의 말이 곧 법이었던 전제군주시대의 논리"라고 반박하며 "민주주의.법치주의가 정착되면서 통치행위를 처벌할 수 없다는 말은 과거 유물이 됐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에서도 이런 주장에 동조하는 의원들이 적지 않다. 검사 출신인 함승희(咸承熙)의원은 "통치행위이므로 수사하지 않고 접어야 한다는 생각은 자칫 제2의 현대상선 사건을 유발할 수 있다"며 "검찰에서 수사해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 법사위 소속의 조순형(趙舜衡)의원도 "통치행위는 독재정권 때나 있던 용어"라며 "헌법재판소가 고도의 정치적 행위도 사법 심사 대상이라고 이미 판시한 바 있다"고 지적했다.

일반적으로 통치행위란 국민의 기본권 침해와 관련이 없고, 정치적 통제 수단이 따로 마련돼 있는 고도의 국정행위에 대해 사법부 스스로 사법 심사를 자제하는 것을 말한다.

학계.법조계에서도 부정적인 견해가 우세하다. 이석연(李石淵)변호사는 "돈이 북한으로 넘어갔을 경우 행여 그 목적의 정당성을 인정하더라도 절차와 방법은 국민적인 합의를 거치지 않았으므로 명백한 위헌적 행위"라고 주장했다.

연세대 전광석(全光錫.법학)교수도 "통치행위가 개인의 이익이나 인권을 침해하면 사법 심사의 대상에서 제외될 수 없다"며 "대북 송금의 경우 철저한 조사를 통해 개인의 인권과 재산을 해치는 소지가 있는지 따져봐야 하므로 사법 심사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건 무리"라고 설명했다.

반면 김선수(金善洙)민변 사무총장은 "북한에의 송금, 즉 대북 지원은 꼭 형사처벌이라는 관점에서 보기보다 남북 관계의 다각화를 위해 필요한 비용으로 봐야 한다"며 "정치적인 타협으로 실마리를 풀어야 할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신용호 기자nov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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