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 아파트서 4대 오손도손, 비결은 '3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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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치 일동제약 회장 가족이 거실에 모였다. 왼쪽부터 뒷줄 시계 방향으로 장남 준구씨, 며느리 양영미씨, 이 회장, 어머니 이성정씨, 부인 이순호씨, 손자 윤승군과 손녀 지원양. 각각 13·10세인 윤승·지원 남매는 지난 2월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로 들어가기 위해 삼성동 자택을 떠날 때 동네대표로 뽑혀 박 대통령에게 진돗개를 전달했다.

“세상에 둘 다 이기는 ‘윈-윈(Win-Win)’이 어딨어유. 서로 조금씩 양보하면서 져주는 게 윈윈이지.”

 이정치(71) 일동제약 회장은 서울시내에서 찾아보기 힘든 4대가 함께 사는 가정의 가장이다. 2000년 손자가 태어나면서 이룬 4대 가정의 유지 비결을 ‘양보하는 윈윈’이라며,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로 설명했다.

 이 회장 부부는 서울 삼성동 54평 아파트에 99세 어머니를 모시고 장남 부부와 그들의 자녀 등 7명이 함께 산다. 두 달에 한 번 분가한 나머지 아들과 두 딸 가족까지 모이면 17명이나 된다.

 이 회장은 어린 시절 4대 가정을 경험했다고 한다. 충남 부여에서 숙부 가족 등 20여 명과 한지붕 아래 지내며 대가족이 사는 방식을 체득했다. “서로 부대끼고 정을 나누고 살던 기억이 좋아 자손들에게 물려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요즘 4대가 함께 사는 가정은 찾기 힘들다. 스위스계 다국적 제약사인 한국노바티스가 2006년과 지난해 장수 캠페인의 일환으로 전국에서 5대 가족을 수소문한 적이 있는데, 각각 26가족과 22가족이 신청했다. 이 가운데 4대 이상이 한 집에 사는 가정은 서울 동작구의 한 가족뿐이었다. 이 회장 가족처럼 두 쌍의 고부가 함께 사는 경우를 찾기란 더 어렵다.

 지금까지 이 회장 집에서 부부싸움이 크게 일어났거나 큰 소리가 난 적은 거의 없다고 한다. 이 회장은 “가족 중에 누군가가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어도 낙천적으로 생각하고 얘기를 안 하는 게 화목의 비결이라면 비결”이라며 “옆 사람이 편안하게 지내도록 배려하는 건 무관심과는 다르다”고 했다. 밥상머리 일장훈시나, 모든 가족이 아침식사를 하는 등의 규율을 내세우지 않는다. 대신 집안이 화목하고(家和), 주변 사람과 화목하며(人和), 어렵더라도 참고 편안한 마음을 가지려고(心和) 애쓴다는 뜻을 담은 가훈 ‘3화(三和)’를 꾸준히 강조한다고 한다.

 이 회장은 고려대 농화학과를 졸업하고 1967년 일동제약에 연구원으로 입사한 뒤 2003년 대표이사에 뽑혔다. 69세 때인 2011년 회장이 된 입지전적 인물이다. 98년 외환위기 여파로 워크아웃에 들어갔을 당시 이 회장은 특유의 낙천적 성격으로 직원들을 다독였다. 공적자금 한푼 안 받고 3년 만에 워크아웃에서 졸업하는 데 기여했다.

 이 회장의 부인 이순호(69)씨는 “얼마전 JTBC에서 방영한 ‘무자식 상팔자’가 끝나면 친구들이 우리 식구를 보는 것 같다고 전화를 많이 걸어왔다”며 “가장 말을 잘 따르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노력하는 평범한 가족일 뿐”이라고 말했다.

며느리 양영미(43)씨는 “아이들이 증조할머니,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 걸 좋아한다. 분가하는 대신 방이 4개밖에 없어 좀 더 큰 집으로 이사하는 걸 고민 중”이라며 웃었다.

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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