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마 뗀 스포트 토토, '山 넘어 山' 한숨…

중앙일보

입력

체육복표 사업 시작 7개월 만에 '영업 부진-복권 게이트 설'로 기우뚱…시장상황도 갈수록 어려워져 젊은 사업가의 정계 고위층 인사 연루설과 특혜 시비, M&A(기업 인수·합병)와 A&D(인수 후 개발)로 기업 사냥….

체육복표 ‘스포츠 토토’를 발행하는 스포츠 토토㈜를 두고 떠도는 루머나 드러난 사실이다. 얼핏 봐도 DJ정권 말기를 뒤흔들고 있는 정현준·진승현·이용호·윤태식 게이트와 닮은꼴이다. 그러다 보니 지금껏 스포츠 토토를 보는 시선이 곱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말로만 떠돌던 루머 하나가 마침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지난해 1월 체육복표 사업자를 뽑는 과정에서 불거졌던 ‘로비설’이 그것. 로비설의 진원지는 여권 실세 보좌관 출신 사업가 최모씨의 운전사였던 천모씨.

그는 지난 3월28일 경제정의실천연합의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스포츠 토토의 지주회사인 타이거풀스인터내셔널의 송재빈 대표(35·스포츠 토토 부사장)가 최씨를 통해 고위층 인사에게 접근해 체육복표 사업권을 따냈으며, 그 대가로 이들에게 타이거풀스 주식과 현금 10억원을 줬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이런 의혹이 제기되자 4월1일 내사에 들어갔다.

로비설 폭로가 ‘복권 게이트’로 번질 조짐을 보이면서 당사자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최씨는 “거론된 고위층 인사와는 미국 유학 시절 만나 호형호제 하는 사이지만 금품 수수나 외압설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송재빈 대표도 “최씨는 사업권을 따고 3개월 뒤에 알게 됐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타이거풀스측은 4월1일 문제의 글을 올린 천씨를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소했다.

이렇게 ‘결백’을 주장하고 있지만 송재빈 대표는 몹시 당혹스런 모습이다. 이른바 ‘황금알을 낳는 거위’‘DJ정권의 마지막 이권 사업’이라던 체육복표 사업이 신통찮기 때문이다.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복권 게이트’설까지 흘러나온 것.

체육복표인 스포츠 토토는 스포츠 경기의 승패나 점수 등을 맞춘 사람에게 당첨금을 주는 일종의 베팅 게임이다. 축구가 생활 깊숙이 자리잡은 유럽 등에서는 꽤 인기가 높은 게임이다.

당연히 토토 시장 규모도 크다. 유럽 5개국(영국·프랑스·이탈리아·독일·스페인)의 토토 시장은 지난 2000년 3조1천억원이었다. 지난해 3월 스포츠 토토를 발행한 일본의 경우도 출범 첫해 6천억원에 이르렀다.

그러다 보니 사업 출범 전 시장 전망은 장밋빛 일색이었다. 능률협회는 스포츠 토토 시장 규모를 3천억원으로 분석했다. 유럽계 컨설팅사는 한술 더 떠 1조2천억원은 가능하다고 내다봤다. 체육진흥공단은 이런 전망을 바탕으로 계약 기간인 5년 동안 2조3천억원의 매출은 무난할 걸로 밝혔었다. 1년에 4천억원 정도 규모다.

스포츠 토토는 그러나 국내에선 죽을 쑤고 있다. 뚜껑을 열고 보니 결과는 딴판이었다. 지난해 10월 첫 선을 보인 스포츠 토토의 매출은 지난 3월까지 78억5천만원. 한달에 10억원 조금 넘게 번 셈이다. 복표 판매액의 50%가 당첨금으로 돌아가는데 지금껏 1등 당첨금이 2억원을 넘은 적이 없다. 그만큼 장사가 잘 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반면 시스템 개발과 구축 등에 들어간 돈만도 1천억원이 넘는다. 인력과 시설 유지비도 만만치 않다. 아직 인지도가 그리 높지 않아 마케팅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그러나 벌이가 시원찮다. 밑져도 한참 밑지는 장사를 하고 있는 셈이다.

황금알은커녕 메추리알도 못 낳는 결과가 빚어지자 잡음이 끊이질 않고 있다. 당장 스포츠 토토㈜와 타이거풀스가 자금난을 겪고 있다는 얘기가 퍼졌다. 스포츠 토토㈜의 지분을 갖고 있는 스포츠 신문사에서조차 스포츠 토토의 어음을 받지 않는다는 말까지 돌고 있을 정도다.

서천범 한국레저산업연구소장은 “장사가 잘 되지 않자 지난해 말 자문을 구하러왔는데 자문료도 주지 못하더라”고 전했다. 복권 사업자인 H사의 임원도 “투자는 잔뜩 했는데 매출이 늘지 않아 빚이 꽤 된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심지어 타이거풀스측이 KLS컨소시엄 몫으로 돌아간 ‘로토복권’ 사업을 겨냥해 사전 포석으로 스포츠 토토 사업을 시작했을 법하다는 관측도 나왔다. 토토 사업으로 기반을 다지고 사업자로서 실력도 인정받아 돈벌이가 더 잘 되는 로토 사업을 하려는 계산이 아니겠냐는 것.

사실 6자리 숫자를 직접 써넣는 로토 복권과 체육복표인 스포츠 토토는 내용은 좀 다르지만 시스템은 거의 같다고 볼 수 있다. 외국의 경우도 일본만 빼고는 대부분 토토 사업을 먼저 하고 나중에 로토 사업을 시작했다.

스포츠 토토측에서도 사정이 나쁘다는 사실을 털어놨다. 체육복표 사업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사실은 잘못 알려진 것이라고 말할 정도다. 스포츠 토토측은 다만 아직은 투자 단계이고 제약 조건도 많아 당장 이익을 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스포츠 토토측은 ▶TV·라디오 광고 금지 ▶경기 종목(축구·농구) 제한 ▶상품 구조와 투표 방법 등의 제한 등을 악성 규제로 들었다.

스포츠 토토 자체가 우리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분석도 있다. 스포츠 토토는 다른 복권이나 카지노와 달리 경기의 승패나 점수를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그만큼 지식과 관심을 가진 스포츠 인구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당장 눈앞에서 당첨 사실을 확인하려는 급한 국민성과도 맞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예컨대 축구의 경우 프로팀의 숫자가 적고 주말과 주중 경기를 모두 묶어 추첨을 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목요일에야 결과가 나오는 실정이다. 더구나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처럼 축구 열기도 뜨겁지 않아 흥미를 높이기도 쉽지 않다.

스포츠 토토측은 그나마 월드컵에 목을 매고 있다. 현재 3천대인 단말기 수를 월드컵 전까지 7천대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월드컵을 계기로 해외에서 팔 수 있는 상품도 내놓을 생각이다. 스포츠 토토측에선 월드컵 붐만 잘 타면 올해 도약의 계기를 잡을 걸로 기대하고 있다. 당장 올해 매출 목표도 3천6백억원으로 잡았다.

그러나 스포츠 토토측이 매출 목표를 이뤄도 여전히 적자를 피하긴 어렵다. 투자비용도 문제지만 스포츠 토토 매출액의 50%는 당첨금으로, 나머지 50%는 스포츠 토토측과 체육진흥공단 등이 나눠 갖기 때문이다. 스포츠 토토측의 몫은 25%(2001년)에서 20%(2006년)로 제한돼 있다.

예컨대 4천억원을 벌어도 스포츠 토토측에게는 1천억원 정도만 돌아간다는 얘기다. 인프라 투자비를 빼고 이익을 내려면 계약 기간이 끝날 때까지 해마다 4천억원에 가까운 매출을 올려야 가능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상황을 보면 말이 쉽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얘기라는 게 중론이다. 더구나 너도 나도 복권 시장에 뛰어들고 있어 파이의 크기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특히 오는 9월에는 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로토 복권이 첫 선을 보인다. 말 그대로 사면초가다.

장사가 신통찮으면 자본 잠식의 속도 또한 더 빨라질 수 있다. 체육진흥공단과 맺은 계약 때문이다. 스포츠 토토의 자본금(2001년 12월15일 기준 5백18억원) 가운데 2백억원은 조흥은행에 담보금으로 예치한 상태다. 돈을 못 벌어도 5년간 2백억원은 물어줘야 한다는 얘기다.

당장 매출이 늘 것 같지 않자 스포츠 토토측은 ‘몸집’을 줄이거나 ‘실탄’을 늘리는 쪽에도 포커스를 두고 있다. 송재빈 대표는 요즘 불요불급한 계열사 정리, 동남아권 시스템 수출, 외자 유치 등으로 정신이 없다는 전언이다. 얼마 전에는 국민은행에서 7백억원을 빌리려고도 했다.

이런 마당에 ‘복권 게이트’의 진원지가 될 거라는 루머가 퍼져 더욱 곤혹스런 모습이다. 장사는 고사하고 자칫 구조조정 노력도 물거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포츠 토토와 타이거풀스가 5번째 게이트의 주인공인 될지 어엿한 복권 사업자로 남을지 관심사다.

출처:이코노미스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