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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고향(44)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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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눈」에 대한 두 가지의 뜻
「눈은 하늘에서 온 편지」라고 어느 과학자는 말했다. 하늘에서 일어나는 가지가지의 사연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북극이나 남극 같은 한대지방과 같이 사시 눈이 쌓이고 쌓여서 빙산을 이루고 있는 곳에서는 눈에 대한 흥미가 적을지 모른다. 그러나 계절이 바뀌고있는 온대지방에서는 눈에 대한 흥미가 커서 과학적으로 또는 문학적으로 그와 진리를 탐구하려는 노력이 옛날부터 계속되어왔다. 그러면 눈이란 무엇인가. 이미 지상에 떨어져서 쌓인 눈을 말할 때가 있고 또 하늘에서 떨어져 내려오는 눈을 말할 때가 있다. 그러나 학술적으로는 눈이라고 하면 하늘에서 떨어져 내려오는 눈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미 지표면에 떨어져서 쌓인 눈은 적설이라고 한다. 따라서 눈의 결정이라 하면 하늘에서 떨어져 오는 눈의 결정을 의미하고 이미 지표면에 쌓여서 본래의 결정을 잃어버린 빙립을 말하지는 않는다. 그러면 눈은 어떻게 해서 생기나. 눈은 수증기의 승화에 의해서 대기 중에 생성되게 마련이다. 기체가 냉각 당하거나 압축 당하게 되면 액체로 변한다. 이 액체를 다시 냉각시키면 고체가 된다.
이와 반대의 과정으로 고체에 열을 가하면 액체가 되고 다시 이 액체에 열을 가하면 기체가 된다. 이것은 물의 경우에서 생각할 때 빙·수·수증기의 세 가지의 상태간을 변화하는 것일 것이다. 우리가 항상 목격하는 것은 이 세 가지의 상태간의 변화이지만 이 외에도 고체로부터 직접 기체, 또는 그 반대로 도중의 액체의 상태를「점프」해서 변화하는 일도 있다. 즉 수증기가 기온이 굉장히 낮은 곳에서 응결하는 경우 물의상태를 거치지 않고 고체로부터 직접 기체가 되고 또 기체로부터 직접 기체로 되는 현상을 일반적으로 승화작용이라고 말한다. 눈은 이러한 승화작용에 의해서 수증기가 직접 얼음으로 된 것이다.
수증기의 의결에 의해서 대기 중에서 낙하 한 것으로서는 비눈·싸라기·우박 등의 종류가 있어서 그의 생성기구가 각각 다르다. 이들 각각 낙하 물에 대한 원인으로는 공기중의 수증기의 농도·온도·기류 등의 여러 가지가 있다.

<유명한 대관령의 대설>
아무튼 눈은 따뜻한 수증기가 자연대류에 의해서 상층으로 올라간 다음 상층 풍에 의해서 기온이 낮은 다른 지역으로 운반되어 가는데서 승화작용으로 고체화할 경우에 생성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수증기가 의결해서 눈이 되려면 핵(종자)이 필요하다.
공기 중에 부유하고있는 수많은 세진·염분 등의 미립자나「이온」등이 핵의 역할을 하게되는데 이 핵에 수증기가 부착해서 생기는 최초의 눈의 상태를 우리는 빙정이라고 말한다. 이 빙정은 육각주 또는 육각추의 모양을 하고 있다.
한국에 내리는 눈은 주로 겨울계절풍에 의한다고 할 수 있는데 이 계절풍은 12월, 1월, 2월에 가장 강해서「시베리아」대륙으로부터 주기적으로 내 뿜겨온다. 이 계절풍은「시베리아」나 몽고대륙으로부터 불어오기 때문에 매우 건조하고 한랭한 기류지만 황해해상을 건너오는 동안에 밑으로부터 따뜻한 수분을 담뿍 공급받게 된다. 이 기류가 서해안에 상륙해서 다시 내륙의 남북으로 장대하게 뻗쳐있는 태백산맥에 부닥쳐 산기슭을 따라 넘어가는 동안에 수증기를 다량으로 포함한 기류가 냉각 당하는데서 승화작용을 일으켜 해마다 대설로 유명한 대관령을 비롯한 산악지방에는 물론이고 평지에서도 눈이 오기 마련이다. 그래서 산악지방일수록 강설량과 강설일수가 많고 평지에서는 적다.

<적설량 60연내 거의 비슷>
흔히 듣는 이야기지만 옛날에는 눈이 많이 와서 쌓인 눈이 허벅다리까지 찼었는데 근래에는 눈이 그렇게 많이 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과거 60여 년 동안의 적설량에 대한 정확한 기상통계자료를 조사해 봐도 그렇게 말할만한 근거는 없다. 아마도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어렸을 때는 눈이 10∼20센티만 와도 무릎까지 올라왔겠지만 어른이 되면서부터는 그 경우의 눈이 와 가지고는 무릎 훨씬 밑으로 내려가게 되는데서 일으킨 착각이 아닐까. 이와 비근한 예로 옛날의 겨울엔 몹시 추워서 털 「오버」에 털 방한모까지 썼는데도 추워서 떨었는데 요새의 겨울은 그러한 것을 착용치 않아도 그렇게 춥지 않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기상통계에서 조사해 볼 때 예나 지금이나 별다른 변화가 없다. 이것은 아마 옛날 남의 식민지생활 밑에서 육식을 제대로 못하여 몸에 지방질이 적었다는데서 추위를 지나치게 탔을 것이고 한편 요즘 도회지에서는 인위적인 가온과 난방시설이 강화되어있기 때문에 그러한 막연한 비교가 나왔을 것이다.

<"많이 와야 풍년든">'
눈이 많이 오는 해는 풍년이 든다는 얘기가 있다. 그러나 이것 역시 기상통계에서 볼 때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물론 보리농사에는 추운 겨울에 눈이 많이 와서 보리를 덮어줌으로써 보온효과를 나타내므로 보리의 동해를 방지하기는 하나 너무 많이 오거나 기온이 차서 이른봄까지도 미처 녹지 않고 있을 경우에는 중요한 일사를 차단시키기 때문에 매우 해로워서 감수가 된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 지구상에 강설한계선에 이상을 가져오고 있다. 이전에는 보통 북위30도 이남에서는 고원의 관설을 제하고는 평지에서는 강설현상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1960년대에 들면서부터는 30도 이남인 아열대지방에서도 눈이 내려서 그곳 주민들이 환성을 올리고 있다. 이것은 지금 한참인 호우 한발 혹한 혹서 등 세계적인 이상기후의 여파가 아닌가본다.
그렇지 않으면 저명한 사계학자들이 말하는 서기2000연대 이후의 소위 소빙기시대의 문턱으로 들고있는 현상일지도 모른다. 일본처럼 눈이 많이 와서 설화가 심한 나라에서는 눈을 두렵게 생각할 것이나 동구 여러 나라와 같이 비가 적은 나라에서는 눈 녹은 물이 농수나 식수가 되어서 눈의 고마움을 한층 더 느끼고 있다.
해마다 격증해 가는「스키가」들이나 겨울등산가, 더욱이 수 없는 희생에도 굴복하지 않고「히말라야」등 빙설로 덮인 산악에 도전하는 동서의 등산가들은 눈과 싸우고, 눈을 즐기고, 눈의 매력에 끌리고있다.

<「노이로제」치료에도>
그런가하면 눈에도 역학이 있다. 심하게 내리면 고압선도 끊어버릴 수 있고「사태」가나면 강철로 만든 철도(레일)마저 엿가락같이 휘어버리는 강한 힘을 갖는다. 뿐만 아니라 눈 눅은 물은 홍수를 이루어서 때아닌 물난리를 당하게 하기도 한다. 반면 눈은 순한 성질도 갖고 있다. 어느 심리학자와 정신병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다.『푸짐하게 내린 눈은 「노이로제」를 가라앉게 하며 마음을 부드럽게 한다는 데서 값있는 치료제가 될 수 있다』-그런가 하면 사회학자는 날뛰는 범죄심리를 가라앉게 해주며 발자국으로 해서 도둑이 줄어들 수도 있다고 말했다.
눈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기묘한 자연의 조각미, 공예미에 이끌려 사람의 마음마저 사르르 녹여버린다. 눈은 함박눈·싸락눈·가루눈·메눈·찰눈·진눈깨비 등 각양각색의 모양과 각판형·성상형·각왕형·수지형 등 갖가지 아름다운 결정을 지니는 외에 강설·취설·적설 등 상태의 멋을 겸하는 계절의 총아이기도하다.「눈은 하늘에서 온 편지」이지만 그 내용은 읽는 사람에 마라 넓이와 길이가 달라진다.<글 서상문 사진 이종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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