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파운드」화의 발자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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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1947년 7월=「파운드」대 「달러」교환성을 회복
8월=교환성 정지, IMF에서 2억4천만 불 인출
▲1949년 9월=「파운드」의 평가를 30·5%절하, 불화교환율은 4불3선에서 2불80선으로.
▲1951년 4·4분기=평가절하로 한숨 돌렸던 영국의 국제수지가 한국동란「붐」∼52년 1·4분기의 반동으로 다시 악화하여 수입제한,「파운드」지출제한조치 등을 재차 실시.
▲1957년 9월=「파운드」방위를 위해 중앙은행 재할 비율을 5%에서 7%로 인상.
▲1961년 3월=서독·화란의 평가절하(5%)를 계기로「파운드」화 평가절하를 예측한 투기가 집중되어「파운드」위기가 심화.
7월=중앙은행 재할 비율을 다시 7%로 인상, 선진제국에서 9억 불의 원조를 받다.
▲1963년 2월=2억5천만불의 원조를 다시 받다.
▲1964년 11월=노동당정권이 흔들림에 따라「파운드」에 대한 불안이 높아져 중앙은행 재할 비율은 세 번째로 7%까지 인상되다. 선진10개국 및 국제결제은행에서 총30억불의 원조를 받다.
▲1965년 봄=심한「파운드」화 매출에 직면, 30억불 원조의 상환기간을 연장하고 1MF에서 14억불을 추가인출. 그 결과 1MF차관총계가 24억불에 달하여 그 상환문제가 이번 평가절하의 한 요인으로 작용.
▲1965년 6월=「파운드」위기가 계속되는 가운데 영국은 경제성장촉진을 위해 중앙은행 재할 비율을 6%로 인하.
▲1966년 7월=국제수지회복과「파운드」방위를 위해 임금·물가동결 등의「디플레」정책을 단행. 중앙은행 재할 비율을 네 번째 7%로 인상.
▲1967년 봄∼여름=실업증가로 중앙은행 재할 비율을 세 번째로 인하.
10월 19일=「파운드」불안이 높아져 중앙은행 재할 비율을 6%로 인상.
11월 9일=중앙은행 재할 비율 6·5%로 인상
11월 18일=「파운드」는 드디어 파국을 맞아 평가를 14·3% 절하하고 중앙은행 재할 비율을 8%로 인상, 선진제국은 사후조치로서 14억불의 원조를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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