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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구구 수사의 과학화를 위해 현장은 고발한다(2)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작년 초여름 땀을 뻘뻘 흘리며 한 사나이가「트럭」의「타이어」를 둘러메고 중앙청 구내에 있는 치안국 감식계에 나타났다. 그는 강원도 횡성 경찰서의「불독」이란 별명을 가진 맹 모 형사.
66년6월6일 밤 논물을 보러 나갔던 횡성군 공근면에 사는 박영철(60·가명)씨가 국도 변에서 차에 치여 죽었다.
박씨를 친 차는 칠흑 같은 밤을 틈타 달아났다. 현장에 나온 맹 형사는 신원을 조사하고 현장을 샅샅이 살폈다. 진흙길에 어렴풋이「타이어」자국이 있었다.「타이어」자국을 뜨게 했다. 그리고 그날 밤 지나간 자동차 1백 여대를 샅샅이 훑었고 끝내「트럭」운전사 한창행(26)을 용의자로 잡았다.
그러나 한은 펄펄뛰며 잡아뗐다. 맹 형사는 바퀴를 떼어 차에 싣고 천리 길을 찾아왔다는 사연이었다.「족흔적반」의 김형사는 미리 석고에 떠놓았던「타이어」자국과 바퀴의 무늬를 감정 해 보았다.
여섯 군데의 찢어진 금이 나란히 들어맞자 맹 형사의 입은 귀밑까지 벌어졌다.
같은 해 7월 경북 청도에서 암자를 턴 복면강도사건이 일어났다. 현장 마루 위에 남은 농구화자국의 특이한 마멸흔에 의해 검거된 김병준도 기를 쓰고 범행을 부인했다. 담당판사가 멀리에서 감식계까지 출장, 과학적인 현장단서의 증언을 듣고 유죄판결을 내렸다.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에서 두 농부가 토지매도증서를 둘러싸고 복잡한 소송싸움을 시작했다. 고씨가 작고한 같은 마을 김씨로부터 이미 사 몰인 밭 3필과 임야 33정보의 땅문서가 문제의 불씨. 낡은 창호지위에「병술 12년2월 1만원」에 거래가 성립된 것으로 돼있었다. 그런데 매도인인 김씨의 아들이『이 문서는 가짜다』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었다. 거기 찍혀있던 김씨의 무인 하나가 단번에 문제를 풀어냈다. 현지 경찰은 죽은 김씨가 전과자였음을 알아내서 치안국 감식계에 지문을 감정 의뢰했다.
60년10월10일 무인과 지문원지에서 뽑아낸 김씨의 지문은 확대 투영기 속에서 일치했다. 문서는 진짜였던 것이다. 「만인부동, 일생불변」의 지문 - 지문은 정확하게 범인을 집어낸다.
화순보건소에 도둑이 든 적이 있었다. 도둑은 지문 세 조각을 현장에 남겼다. 지문반은 수법원지에서 우선「병원털이」전과자 6백 명을 뽑아내어 이들의 지문을 현장지문 과 일일이 대조해 나갔다. 전과 4범「정갑순」의 지문이 딱 떨어졌다. 정갑순은 현장에 명함을 남겨 놓고 떠났던 셈.
송천동에서 친형의 권총에 피살된 장갑식(24)군의 경우도 그의 지문 때문에 신원이 판명돼 사건은 풀렸다.
이같이 지문은 어떠한 문서보다도 정확하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전 국민의 지문을 떠놓는 것은 국민 전부를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현재 치안국엔 10지 지문 2백20만장과 1지 지문 19만장이 갖추어져 있다. 이 같은 지문은 범죄수사만 대비한 것이 아니고 불의의 사고에도 대비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렇게 될 때「범인은 걸 곳이 없다」는 것이다.
10월23일 군하군을 담았던「링게르」상자에서 채취된 네 조각의 지문이 감식계에 도착했다. 확대경 속에서 확인된 그중 뚜렷한 놈은 다름 아닌 파출소 사환주군의 것. 나머지는 지문들이 어지럽게 겹쳐있어 감식불능 - .
범인이 남기고 간 증거를 인멸시켜버린 결과가 된 것이다. 감식수사는 현장에서 범인들과「통성명」하는 지름길. 그래도「수사하는 사람들」은 이것을 활용하려들지 않는다. 전문가Y총경은 이렇게 탄식했다.『아직 모릅니다. 몰라요. 윗사람들부터 알지 못하는걸... 형사들이 어찌 관심인들 가지겠소』 <안병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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