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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키스가 탐내는 남자, 이대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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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미국 메이저리그 얘기가 나오자 이대호(31·일본 오릭스)가 슬며시 웃었다. 이어 밝은 목소리가 전화기를 통해 흘러나왔다. “제가 추신수(31·신시내티)·류현진(26·LA 다저스)과 한 무대에 선다고요? 그날이 올까요? 밑바닥에서 시작한 제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날요.”

2001년 백인천 “선수도 아니다” 혹평

 이대호의 메이저리그 진출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도쿄스포츠 등 일본 언론은 “뉴욕 양키스 스카우트가 4월 26일 오릭스 경기를 봤다. 이대호는 올해로 오릭스와의 2년 계약이 끝난다. 오릭스 구단은 이대호를 (미국에) 빼앗기지 않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보도했다. 스카우트들 사이에서는 메이저리그 몇몇 구단이 이대호 영입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이대호 인생엔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단단하게 맨땅을 다져 한 계단씩 올라섰다. 어린 시절부터 자기 힘으로 싸워 이겨야 했다. 첫 상대는 가난이었다. 세 살 나이에 아버지를 여읜 이대호는 두 살 터울의 형 차호씨와 함께 시장에서 된장을 파는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할머니가 시장에서 팔고 남은 김치 줄거리로 죽을 쒀 주셨어요. 하루 살기도 버거운데 야구부 회비 낼 엄두도 못 냈죠.”

 이대호는 2001년 투수로 롯데에 입단하자마자 어깨 부상을 당했다. 타자로 전향했지만 백인천 당시 롯데 감독은 이대호를 두고 “선수도 아니다”라며 혹평했다. 키(1m93cm)는 크지만 체중이 너무 나갔기 때문이다. 그는 무리하게 훈련하다 왼쪽 무릎 연골이 파열되는 중상을 입었다. 이겨내기 힘든 시련의 연속이었다.

 뚱뚱하지만 이대호는 잘 쳤다.

2006년 프로야구 사상 두 번째(1984년 이만수 이후)로 타격 3관왕(홈런·타율·타점)에 올랐다. 2010년에는 도루를 제외한 공격 전 부문인 타격 7관왕에 올랐다. 프로야구 최초의 기록이었다. 이대호는 2012년 2년 총액 7억 엔(당시 약 105억원)의 좋은 조건으로 오릭스에 입단했다.

 가난으로 단련된 이대호는 부와 명예를 손에 쥐고도 느슨해지지 않았다. 일본 첫 해 한국 프로야구 선수로는 처음으로 개인 타이틀(퍼시픽리그 타점왕·91개)을 따냈고, 홈런 공동 2위(24개)에 올랐다. 천하의 이승엽(37·삼성)도 일본 첫 해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지만 이대호는 어렵지 않게 해냈다. 그는 파워뿐 아니라 타격의 정확성도 뛰어나기 때문에 제구력 좋은 일본 투수들을 잘 상대했다.

일본 진출 2년 만에 타격 3관왕 노려

 올해는 더 무서워졌다. 지난달 30일 니혼햄전에서 일본 진출 후 처음으로 홈런 2개를 터뜨렸다. 1일 현재 그는 리그 타격 2위(0.392), 홈런 공동 3위(5개), 타점 2위(23개)에 올라 있다. 일본에서 정상에 올랐으니 다음 목표는 세계 최고의 무대다. 이대호도 메이저리그를 꿈꾸고, 미국도 그를 원한다.

 미국은 아시아인 홈런타자를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 2002년 일본 요미우리에서 50홈런을 때린 마쓰이 히데키(39)를 양키스가 데려갔으나 그는 2003년 16홈런에 그쳤다. 일본 최고의 괴물타자였던 마쓰이도 미국의 파워 피처를 이겨내지 못했다. 당시 조지 스타인브레너(2010년 사망) 양키스 구단주는 “스테이크(홈런타자)인 줄 알았더니 햄버거(중거리 타자)였다”며 마쓰이에 대한 실망감을 노골적으로 표현했다. 이후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한국과 일본에서 투수들을 주로 데려왔고, 타자를 영입할 때는 아오키 노리치카(밀워키) 같은 교타자를 골랐다.

 이대호는 다를까. 스카우트 관계자들은 한국 최고의 타자였던 이대호가 일본에서 연착륙한 점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야구 스타일과 주변 환경이 전혀 다른 일본에서 적응했다면 미국에서도 성공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추신수·류현진과 같은 무대 서고 싶다”

 허구연 MBC 해설위원은 “이대호가 한국 프로야구 타자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것을 기대한다. 지명타자 제도가 있는 아메리칸리그로 간다면 더 수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이효봉 XTM 해설위원은 “메이저리그 투수들은 일본과 달리 공격적인 피칭을 한다. 부드럽고 정교한 스윙을 하는 이대호에게 오히려 잘 맞는 스타일”이라고 평가했다.

 지금까지 미국은 한국 프로야구 출신들을 저평가했다. 아마추어 유망주들만 싸게 사들였다. 야구에도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있었던 것이다. 빅리그 정상급 외야수로 발돋움한 추신수도 2001년 부산고를 졸업한 뒤 미국으로 직행했다. 추신수를 비롯해 메이저리그의 한국 선수들 대부분이 미국 마이너리그를 거쳐 성장했다.

 메이저리그가 한국 프로야구 출신을 제대로 대접해 데려간 건 류현진이 처음이다. 올 시즌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류현진이 뛰어난 피칭을 보이는 것도 이대호에게 호재다. 류현진 덕분에 미국은 한국 야구를 재평가하기 시작했고 ‘한국산 타자’ 이대호의 가치도 높게 평가할 것이 분명하다.

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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