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원 과학전문기자
코메디닷컴 편집주간
“로마에 가면 로마 법(풍습)을 따르라.”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야생 원숭이도 이 같은 원칙을 지키는 것으로 확인됐다. 주인공은 남아프리카공화국 마와나 사냥금지구역의 버빗원숭이. 기존 집단에 끼어든 신참은 재빨리 새 이웃들의 사회적 규범에 따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규범이 자신들에게 타당해 보이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말이다.
지난주 영국 세인트앤드루스 대학 연구팀이 과학저널 ‘사이언스(Science)’에 발표한 논문을 보자. 연구팀은 각기 23~44마리로 구성된 네 무리의 버빗원숭이에게 분홍색이나 파란색으로 물들인 옥수수를 제공했다. 두 무리에는 맛이 없도록 조작한 분홍색 옥수수를 제공해 파란 옥수수를 선호하게 만들었다. 나머지 두 무리는 거꾸로 분홍색을 좋아하게 유도했다.
4~6개월 후 연구팀은 옥수수의 맛에 차별이 없게 만들었지만 기존 선호는 바뀌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짝짓기 철이 되자 젊은 수컷들은 소속 무리를 떠나 다른 무리에 끼어들었다. 짝을 밖에서 찾는 이 같은 관행은 전체 집단의 유전적 다양성을 강화하는 효과가 있다. 연구팀은 옥수수 색깔 선호가 자신들과 반대인 무리로 건너간 수컷 10마리의 행태를 주목했다. 그 결과 9마리가 새로 섞인 그룹에서 선호하는 옥수수를 먹는 것으로 관찰됐다. 기본적으로 동료와 어울리기 위해 기존 관습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원래 선호를 유지한 예외 한 마리는 새 집단에서 가장 높은 서열을 차지한 놈이었다. 남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연구팀의 앤드루 화이튼 교수는 “자연에서 이 같은 순응적 행태는 타당한 것일 수 있다”면서 “현지 지식은 해당 환경에서 최선의 행동 방침을 알려주는 가장 좋은 가이드일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인간에게는 낯선 곳에 가거나 새로운 문화를 접했을 때 현지 지식을 알려고 하는 욕구가 존재한다.
이번 연구 결과는 이 같은 욕구가 진화한 이유를 설명해줄 가능성이 있다. 한편 지난주 ‘사이언스’에는 혹등고래가 동료의 새로운 사냥 기법을 보고 배운다는 내용의 논문도 함께 실렸다. 1980년대 초반 처음 관찰된 사냥 기법이 이후 세계 혹등고래의 40%에 전파됐다는 내용이다. 이런 연구들은 동물의 왕국에 본능이 아니라 학습을 통해 형성된 문화가 널리 퍼져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다만 우리가 지금껏 모르고 있었을 뿐이다.
조현욱 객원 과학전문기자·코메디닷컴 편집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