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다를 거다' 죽기 살기로 했지만, 퇴직금 다 날리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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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30여 만 명의 자영업자가 가게를 내고 또 그 정도 사람들이 폐업한다. 23일 서울 방배동의 한 노래연습장도 부서졌다. 철거를 맡은 유래건설 고영준 사장은 “인테리어에 3억원을 들였다는데 몇백만원 월세도 못내고 1년 넘게 인수자도 없어 결국 문을 닫았다”고 전했다. [김성룡 기자]

친구에게

 회사 그만두고 먹는 장사 계획 중이라며. 내가 그 얘기 듣고 급한 마음에 이 메일 쓰는 거야. 제발 남들 다하는 먹는 장사 같은 건 하지 말라고.

‘내가 사장 됐다’며 축하차 찾아왔던 서울 홍대 앞 ‘매운 닭발집’ 알지, 나 그거 6개월 만에 접었어. 회사 그만둔 지 10개월 만에 퇴직금 모두 날리고 괜히 가족만 고생시켰지. 사실 퇴직 1년 전쯤부터 홍대 앞에서 식당 자릴 물색했어. 회사 그만두면 딱히 할 일도 없고 ‘그저 먹는 장사가 최고겠지’ 하면서. 그래도 못 미더워 시장조사랍시고 골목길도 헤집고 다니고, 여기저기 잘한다는 닭발집에 몰래 가 맛도 보고 했어. 그 10평 남짓한 가게 차리는 데 퇴직금 1억5000만원을 모두 쏟아붓다시피 했지. 계약금 5000만원에 월세가 500만원이나 하더군. 또 인테리어 3000만원, 테이블부터 하다 못해 접시까지 각종 집기 사는 데 2000만원 들었어. 거기다 주방 아줌마 200만원, 홀서빙하는 분한테 160만원, 이럭저럭 한 달에 나가는 돈만 1000만원 가까이 들었어.

 처음엔 개장 기념으로 라이터도 돌리고 계란말이 서비스도 내놓고 했더니 꽤 장사가 됐어. 8개 테이블에 손님이 꽉 찰 때는 ‘이러다 금방 부자 되겠다’ 쾌재도 불렀지. 그런데 웬걸, 한두 주 지나니 손님이 뚝 끊기더라고. 주말 말고는 손님 구경하기가 힘들었어. 난 새벽마다 독산동 시장 가서 닭발 사고 밑반찬용 채소도 사 나르면서 피곤한 줄 몰랐어. 등록금 부담 줄인다며 군대 간 큰놈하고 새벽마다 돕는다며 따라다니는 둘째놈 생각해서라도 ‘죽기 살기로 하자, 여기서 무너지면 모든 게 끝이다’고 수없이 되뇌었고.

 하지만 매출 없는 건 어떻게 배겨 낼 수가 없더군. 그래도 매달 월세·월급은 꼬박꼬박 나가야 하고. 회사 다닐 때는 월급날만 기다렸잖아. 그런데 입장이 180도 달라지더라고. 월세날, 월급 주는 날 되면 어디 가 꼭꼭 숨고 싶더라니까. 정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아무리 찾아도 주변에 마땅한 데가 없더라고. 결국 고민 끝에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어.

솔직히 아직도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어. 하지만 폐업을 하고 나니 이 골목 저 골목에 연일 새 가게가 문을 열고 또 닫고 하는 게 보이더군. 그때서야 베이비부머 은퇴자가 넘친다더니 진짜 다들 먹는 장사로 몰리는구나 싶더라고. 다들 ‘나는 다를 거다’며 뛰어들지만 결론은 비슷한 거지.

나도 뒤늦게 알았지만 소상공인진흥원 같은 데서 은퇴자를 위한 직업교육이나 창업교육 같은 게 있어. 혹시나 그래도 창업해야겠다면 꼭 찾아가 보게. 그런데 우리 강사가 이러더군. “창업전선에 뛰어들면 십중팔구는 3년 내 이 자리에 다시 온다. 눈을 낮춰서 조금 적더라도 월급받는 직장을 구하라”고.

정리=장정훈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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