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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히토 일왕을 단죄했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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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일본의 아시아 침략은 나치의 유대인 학살만큼이나 분명한 역사다. 일본의 군국주의 망동으로 20세기 아시아에는 피와 눈물이 흘렀다. 일본의 침략이 없었다면 한반도는 분단되지 않았을 것이다. 분단 때문에 한반도엔 아직도 피가 흐른다. 아시아에는 아직도 일본군에게 학살당한 영혼들이 떠돌고 있다. 그런데도 일본에선 아베 총리가 침략을 부인하고 있다. 극우파는 침략 망령을 다시 불러내고 있다. 이는 역사의 부정이요 인류에 대한 패륜이다.

 일본이 이렇게 된 데에는 세계인도 책임이 크다. 일본의 전쟁 책임을 철저하게 추궁하지 않은 것이다. 20세기 이래 침략 전쟁의 최고 책임자는 어떤 형태로든 죄값을 치렀다. 독일 황제 빌헬름 2세는 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베르사유 조약에서 전승국들은 그를 법정에 세우기로 결정했다. 네덜란드가 그를 넘겨주지 않아 재판은 없었지만 세계는 응징을 결의했던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3대 전범 국가는 독일·이탈리아·일본이다. 히틀러 독일 총통은 자살했다. 무솔리니 이탈리아 총리는 반(反) 파시스트 유격대원들에게 살해됐다. 그런데 유독 히로히토 일왕만이 벌을 받지 않았다.

 1946년 연합국은 도쿄 전범재판을 열었다. 영국·소련·호주 등은 일왕을 재판에 회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연합국 최고사령관 맥아더는 생각이 달랐다. 그를 보호해야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일본을 개조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일왕의 권위가 있어야 일본 국민이 따라 줄 거라 믿었던 것이다. 그는 미국 정부를 설득했고 결국 일왕은 법정에 서지 않았다.

 일왕을 빼고 28명이 기소됐는데 핵심은 도조 히데키였다. 그는 육군대장으로 총리와 내무·육군대신을 겸했다. 도조를 비롯한 전범들은 일왕을 전쟁 책임에서 빼내려 애를 썼다. 이는 미국이 원한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 일왕의 책임은 명백한 것이었다. 일본제국 헌법에 따르면 일왕은 대원수이자 최고 권력자였다. 그런 일왕의 뜻에 반해 전쟁을 일으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일왕은 1941년 미국과 영국에 전쟁을 선포하는 선전조서(宣戰詔書)에 서명하기도 했다.

 오늘날 한·미·중은 물론 적잖은 일본 학자들조차 ‘일왕 면죄부’를 비판한다. 도요시타 나라히코 전 교토대 법학교수는 수십 년간 히로히토를 연구했다. 저서 『히로히토와 맥아더』에서 그는 이렇게 지적했다. “도쿄재판은 주역을 빼놓은 채로 도조 일파에게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미·일 합작이었다. 이렇게 해서 전후 일본에서 히로히토에게 전쟁 책임을 묻는 것은 사실상 터부가 되었다.”

 히로히토 일왕이 법정에 섰다면 지금 많은 게 달라져 있지 않을까. 히로히토는 침략 전쟁을 사죄하는 증언을 남겼을 것이다. 그러면 지금 아베처럼 일개 총리가 침략 전쟁을 부인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일왕은 일본인에게 신과 같은 존재였다. ‘신’이 사죄한 걸 ‘신민(臣民)’이 어떻게 부정하겠는가.

 1995년 무라야마 총리는 공식 담화에서 침략을 사죄했다. 그런데 아베는 지금 이를 부정한다. 아베가 그렇게 하는 건 무라야마가 같은 총리급이기 때문일 것이다. 히로히토가 사죄했다면 ‘망언 아베’는 없을 것이다.

 일본 사무라이들은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시신을 태웠다. 일본 731부대는 식민지 주민과 전쟁포로에게 생체실험을 자행했다. 포로들은 마루타(통나무)로 불렸다. 일본군은 중국 난징과 싱가포르에서 중국인 수만~수십만을 학살했다. 한국·중국인을 비롯한 아시아인 100여만 명이 학도병·노동자·위안부로 동원됐다. 아시아가 존재하는 한 일본의 침략 범죄는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명성황후의 유골, 마루타 살점, 난징에서 작두로 잘려진 중국인들의 머리, 그리고 종군위안부의 피눈물을 섞어 ‘분노의 화살’을 만든다. 안중근 의사의 총탄과 함께 그 화살을 아베에게 보낸다.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