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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락장에서 조심해야 할 함정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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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0호 20면

개인적으로 ‘개미투자자’라는 단어를 싫어한다. 개인투자자를 힘없고 어리석은 존재로 비하하는 느낌이 들어서다. 대학 시절 과외비를 받아 모은 몇백만원을 운용한 개인투자자로 출발했지만 당시 기관투자가에 비해 뒤진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에 비해 특정 분야에 대해서는 많이 알고 있다는 자부심과 함께 의사 결정이 자유롭다는 이점을 십분 발휘하려 노력했다.

증시 고수에게 듣는다

나는 투자자를 기관과 개인으로 구분 짓지 않는다. 공부하는 투자자와 공부하지 않는 투자자로 나눌 뿐이다. 기관·개인을 막론하고 성공하는 투자자는 공부하는 투자자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성공한 개인투자자들은 자기 돈을 지키기 위해 독하게 기업을 분석한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파트타임 형태인 개인투자자가 조직으로 움직이는 풀타임 기관투자가에 우위를 지킨다는 게 현실적으로 힘들다. 주말골퍼가 매일 드라이버·아이언·퍼팅 연습을 골고루 하는 프로선수를 모든 홀에서 이기기 힘든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주말마다 줄기차게 가 본 특정한 골프장에서 실력 차이가 뚜렷하게 나지 않는 파3 홀이라면 주말골퍼도 승산이 있다.

즉 직업적 배경이든 개인적 관심사이든 개인들마다 깊이 있는 지식을 자연스레 갖고 있는 부분이 있다. 편의점을 운영한다면 요즘 사람들이 어떤 과자를 좋아하는지, 자동차 회사에 다닌다면 요즘 잘나가는 차종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처럼 말이다. 주식 투자는 종목을 고르는 게임이다. 따라서 전반적으로 안다는 사실이 승리를 보장하는 게 아니라 그 종목에 대해 더 많이 아는 사람이 승리하는 것이다. 특정 영역에서라면 자연스레 습득한 배경지식에 공부를 더한 개인투자자가 이길 수 있다. 역사상 최고의 펀드매니저인 피터 린치가 생활 속의 투자 아이디어 발굴을 주장한 이유이기도 하다.

일러스트 강일구

공부 많이 하는 투자자가 이긴다
개인투자자가 실패하는 이유로 많이 언급되는 원인은 욕심과 공포다. 욕심이 앞서 급등주에 목을 매고 공포에 질려 바닥에 주식을 판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지만 어떤 투자자가 욕심과 공포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욕심과 공포는 관리의 대상이지 누구에겐 있고 누구에겐 없는 문제가 아니다. 다만 기관투자가들은 욕심과 공포의 속성이 다를 뿐이다. 기관투자가들은 프로리그의 경쟁자들을 앞서고 싶은 욕심과 경쟁자들과 다른 판단을 해 경쟁에서 탈락하게 될 공포라는 역설적인 상황에 처하곤 한다.

개인투자자와 기관투자가들의 욕심이 만나는 지점이 바로 주도주다. 오늘 올랐기 때문에 내일도 오르는 주도주는 개인에게는 단기 수익을, 기관에는 시장 초과 수익률을 제공하는 치명적인 매력이 있다. 주도주 추종 매매의 문제는 이러한 매력이 욕심과 결합돼 투자자의 눈을 가려 버린다는 점이다. 첫째, 주도주는 고평가 여부에 대한 판단을 무디게 만든다. 그래서 주도주의 끝은 이카루스의 날개처럼 폭락으로 귀결된다. 둘째, 주도주는 주도주가 아닌 종목에 대한 관심을 끊게 만든다. 주도주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저평가된 종목을 도외시하게 되면 리스크를 낮추면서 잠재수익률을 올려가는 적절한 종목 교체가 이뤄지지 않아 결과적으로 포트폴리오의 안정성을 저해하게 된다.

주도주의 특징은 상승장뿐 아니라 하락장에서도 나타나는 끈질긴 생명력을 자랑한다. 최근의 하락장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GS건설의 어닝쇼크와 중국 경기 둔화로 촉발된 경기순환주의 몰락은 극단적인 내수주 선호현상으로 이어져 소위 경기방어주들이 주도주로 떠올랐다. 필자도 투자성향상 내수주 혹은 경기방어주를 통상적으로 선호하지만 지금은 고평가의 영역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판단이다.

주도주는 포트폴리오 안정성 저해
주도주의 문제 외에도 개인투자자들이 특히 잘 걸려드는 함정이 있다. 바로 낙폭 과대주에 대한 무분별한 매수다. 금융위기 이후 정치인들이 증시를 쥐락펴락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정책 수단을 동원해 증시의 바닥을 만들어 주다 보니 결국 빠진 주가는 올라간다는 믿음이 생긴 것 같다. 코스피지수가 1800과 2000을 오간다 생각하고 박스권 매매를 하는 개인투자자들이 많아진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최근 낙폭이 과대한 건설·조선·화학·철강 등의 업종은 단지 외부 요소에 의한 일시적 부진이라기보단 경기둔화와 공급과잉이라는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바가 크다. 즉 개별 종목의 고유한 리스크와 관련된 문제란 뜻이다. 이런 요소를 간과하고 많이 빠졌다는 이유만으로 주가 복원력을 과신하는 행동은 큰 재앙을 낳을 수 있다. 장기적인 관점이 아니라 단기 반등을 노리는 의도도 문제가 많아 보인다.

수익률은 ‘하락나무’에서 출발한다
개인투자자들이 ‘개미투자자’라는 탈을 쓰면 어떻게 될까. 대부분 기업을 비난하고 큰손들에 음모론을 씌우고 시장 감시자들의 태만을 지적하는 태도를 보인다. 손실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 것이다.

물론 일부 공감할 내용도 있지만 잘못된 결과가 있다면 그 원인을 외부가 아닌 나에게서 찾는 게 먼저다. 그래야 발전이 있다. 공부하지 않았으니 주도주에 검증 없이 뛰어든 것이며, 잘 알지 못하니 펀더멘털에 대한 점검 없이 주가 하락폭만 놓고 저평가 여부를 가늠하는 것이다.

어릴 때 읽은 동화 중 이런 내용이 있다. 정원에 행복나무와 불행나무가 있었는데 주인공이 행복만을 원해 도끼로 불행나무를 잘라냈다. 그랬더니 행복나무마저도 시들어 죽어 버렸단 이야기다. 불행이 있어 행복이라는 상대적 개념이 존재한다는 교훈이다.

개인투자자들은 상승장만을 원한다. 하지만 주식 투자의 본질은 싸게 사서 높은 가격에 파는 게임이다. 싸게 사려면 하락장이 필요하다. 동화 속 이야기처럼 ‘상승나무’는 ‘하락나무’가 베어지면 함께 존재할 수 없다. 진정한 수익률의 제고는 ‘하락나무’에서 출발해 ‘상승나무’에서 열리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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