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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 잔류자 철수령 … 박 대통령 중대조치 실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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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누구도 먼저 닫겠다고 말하진 않지만 폐쇄 수순으로 치닫고 있다. 123개 한국 기업이 진출해 5만3000명의 북한 근로자들이 일하던 개성공단의 현주소다.

 북한은 26일 김정은이 책임자(제1위원장)인 국방위원회 정책국 대변인 담화를 통해 개성공단 문제를 논의하자는 우리의 당국회담 제의(25일)를 거부했다. 정부도 이에 맞서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긴급 외교안보장관회의를 열어 공단에 잔류하고 있던 남측 기업 관계자와 공단관리위원회 직원 176명의 전원 철수를 결정했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이날 오후 6시 ‘대한민국 정부 성명’을 통해 “우리 국민의 보호를 위해 개성공단 잔류 인원 전원을 귀환시키는 불가피한 결정을 내리게 됐다”고 발표했다. 류 장관은 “북한 당국은 남북 간 합의와 개성공단 관련 법령에 근거해 우리 국민의 안전한 귀환을 보장하고, 입주기업의 재산을 철저히 보호하라”고 촉구했다.

첫 철수는 27일 오후 2시 130명이 승용차 등 차량 70대를 이용해 귀환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정부 성명은 긴급 외교안보장관회의의 결론이었다. 박 대통령은 회의 모두 발언에서 “ 국민들의 희생이 너무 크다”면서 전날 밝혔던 ‘중대조치’의 이행을 예고했다. “벼랑 끝 협박에 뭔가를 내주는 악순환의 고리는 끊어야 한다”는 지론대로 내린 결정이었다.

 앞서 정부는 25일 북한에 공단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를 제의하면서 “26일 오전까지 회신을 달라”고 요구했고, 불응 시 ‘중대조치’를 취하겠다고 강조했다. 북한은 우리 측이 제시한 시한을 두 시간 이상 넘긴 26일 오후 2시25분 담화를 내고 “그 무슨 ‘돈줄’이니 ‘퍼주기’니 하며 우리의 존엄까지 악랄하게 중상모독하다 못해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는 괴뢰 패당의 죄행은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자신들의 단골 메뉴였던 ‘중대조치’를 남측이 쓴 데 당황한 듯 “우리가 먼저 최종적이며 결정적 중대조치를 할 것”이라고 반발했다. 이어 북한은 “그처럼 개성공업지구에 남아있는 인원들의 생명이 걱정된다면 식자재가 쌓여 있고 의료보장대책이 세워져 있는 남측으로 모든 인원들을 전원 철수하면 될 것”이라며 “철수와 관련하여 제기되는 신변안전보장대책을 포함한 모든 인도주의적 조치들은 우리의 유관 기관들에서 책임적으로 취해주게 될 것”이라고 했다. 전원 철수를 할 수 있으면 해보라는 투였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전격적인 초강수로 응수했다. 지금까지의 발언이 허언(虛言)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첫 조치다. 북한과의 협상에서 끌려 다니는 일이 없을 것이란 점을 확실히 한 셈이다.

 북한으로선 5만여 명 근로자 철수라는 패착으로 궁지에 몰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박 대통령도 다음달 초 한·미 정상회담 때 내놓으려던 동북아 구상인 ‘서울 프로세스’를 일부 수정해야 할 상황이 됐다.

  한 북한전문가는 “남북한이 모두 서로를 ‘팃포탯(tit for tat·앙갚음)’ 방식으로 위협하는 함정에 빠졌다”며 “박근혜정부가 여기에 발목이 묶이면 자칫 이명박 정부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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