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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앉아 점을 쳤던 이순신 장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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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점(占)을 쳤단다. 아들 면이 병이 난 지 한 달이 되었는데 낫지 않자 걱정하다가 홀로 앉아 점을 치고, 아내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앉았다 누웠다 잠을 이루지 못해 촛불을 밝힌 채 뒤척이다 이른 아침 세수하고 조용히 앉아 점을 쳤다. 그런가 하면 장문포 전투 직전엔 전투를 걱정하면서, 왜적이 출현할 것인지 걱정이 되어, 영의정 류성룡의 사망설에 당혹스러워서, 비가 많이 내리는 걸 걱정하며 그는 홀로 점을 쳤다.

 전쟁터에서 어느 하나 만만치 않은 고민의 순간에 점친 기록만 『난중일기』엔 17번 나오는데, 이 중 14번이 홀로 앉아 점을 친 이야기란다. 최근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가 개최한 ‘인간 이순신 재조명’ 세미나에서 발표된 역사평론가 박종평씨의 논문에 그려진 ‘점치는 인간 이순신’의 모습이다. 충무공은 좋은 괘가 나오면 ‘마음을 놓았다’ ‘매우 길하다’며 기뻐하고, 앞으로도 계속 비가 내릴 괘가 나오자 농사일을 염려한다. 막막한 전쟁터, 생사기로에 선 현실,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한 인간으로서 충무공의 고뇌와 외로움이 절절하다.

 점(占). 그건 참 허망한 것이다. 나도 한때 답답한 마음에 점집을 찾아간 일이 있었다. 몸이 아팠던 막내동생을 입원시켰던 무렵이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나도 학생으로 세상 물정 몰랐던 그때, 지병이 있는 동생을 어떻게 돌봐야 할지 막막했었다. 그래서 가톨릭 사제가 되려는 동생의 안위를 물으러 수소문해 점집을 찾아갔다. 그때 역술인이 말했다. “골골 팔십이라고 자기 천수를 다 누리고 누나보다 더 오래 살 테니 걱정 말라”고. 인간이 어리석은지라 나는 그 말을 복음처럼 믿었다. 그래서 그 후에도 수시로 병치레를 하는 동생의 병을 돌보기보다 나보다 오래 살아남을 사제 동생을 위해 뭘 준비할지만 궁리했다. 지난해 그 동생을 앞세워 보내고 나서야 내가 얼마나 허망한 믿음에 매달려 살았는지 알게 됐다.

 하지만 짧은 미래조차 예측할 수 없는 약한 인간들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허망한 점괘에라도 매달리는 모습은 인간사의 한 장면일 거다. 이 논문에서 유달리 점치는 장군의 모습이 남는 것은 장군조차 딱한 인간이었다는 안쓰러움 때문이었다. 그런 막막함은 한 번만으로도 간단치 않은데, 충무공은 1594년부터 96년까지 2년간 14차례나 됐다니. 충무공의 삶의 무게는 얼마나 무거운 것이었을까. 정말 우린 엄살 피우면 안 될 것 같다.

 내일이 충무공 이순신 탄신일이다. 또다시 일본의 망발은 끝 가는 데를 모르고, 북쪽의 김정은은 위협을 그치지 않는 어수선한 시국에 맞는 장군의 탄신일이어서일까. 국운을 한 몸에 짊어졌던 그분의 인간적인 고뇌가 새삼 애련한 것은….

글=양선희 논설위원
사진=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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