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수출단가 하락…증시 기초체력 떨어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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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국내 증시의 체력은 과연 튼튼한가.

기업들이 지난해 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린 데다 경기 흐름도 다른 나라보다 좋다는데, 증시가 바닥없는 추락을 거듭하자 '펀더멘털(기초 여건)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본격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지난달 29일 발표된 산업활동 동향에서 나타난 경기악화 신호가 펀더멘털 논쟁에 불을 댕겼다.

지난해 12월 도소매 판매 증가율이 1.9% 증가(전년 동월 대비)하는 데 그쳐 22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내수 둔화가 심화될 것으로 우려됐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4월 중순 이후 증시가 계속 하락하는데도 "펀더멘털은 괜찮은데 제대로 평가받지 못해 주가가 약세를 보일 뿐"이라고 주장해왔다.

실적 호전으로 주가가 오를 수 있는 발판은 마련됐으나 미국 증시의 하락 등에 따른 악재로 투자심리가 악화해 한국 주식이 '저평가'됐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악재가 사라지면 투자심리가 살아나면서 주가도 오를 것이란 장밋빛 전망은 번번이 빗나갔다. 외국인들도 말로는 '한국 주식이 싸다'고 했지만 정작 주식을 사지는 않았다.

최근 국내 증시의 폭락세에 대해서도 북한 핵문제와 미국.이라크간 전쟁위기 등으로 투자심리가 크게 꺾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그러나 이들 변수는 주가에 영향을 주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증시 바깥의 사정(외생 변수)에 불과하다. 결국 국내 증시가 침체한 이유는 대외 변수 때문이 아니라 '흔들리는 펀더멘털'때문이라는 얘기다.

최근 나오는 '경고 메시지'는 내수 둔화와 수출감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SK증권 오상훈 투자정보팀장은 "사실상 지난해부터 경기는 둔화하는 길목에 있었으나, 당국의 통화량 증가정책 때문에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라며 "숨겨진 거품이 꺼지면 내수 부진이 생각보다 오래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내수를 끌어올릴 별다른 정책 대안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종전에는 소비가 줄 때 건설경기 부양 등을 통해 급한 불을 껐지만, 최근엔 가계대출 등으로 소비자들이 미래의 예상 소득을 이미 써버린데다 금리도 바닥권이어서 통화정책이 먹힐 여지가 거의 없어졌다.

내수의 회복 속도가 늦어지면 '하반기 증시 회복'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내수를 대신해 경기를 떠받쳤던 수출에 큰 기대를 걸기도 어려울 전망이다.

수출 단가나 수출 증가율 등이 현재 정점에 있어 앞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세계적으로도 적정 수요를 넘어선 설비투자로 공급이 늘면서 제품값이 떨어지는 추세다. 과거 국내 증시의 경험에 따르면 주가는 경기와 기업이익에 큰 영향을 미치는 수출 단가 증감률과 거의 비슷한 움직임을 보였다.

LG투자증권 리서치센터의 박윤수 상무는 "매출이 꾸준히 늘어야 기업이익이 증가하는데, 외환위기 이후 나타난 매출 증가는 재무구조개선이나 인력 감축 등에 따른 일회성 성과물이었다"고 말했다.

앞으로 이익이 꾸준히 늘 것이란 확신이 없다면 '사상 최대의 실적'도 큰 의미를 갖기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상장사들의 매출 흐름이 점점 악화하고 있고, 그에 따라 주가도 떨어지고 있다.

대우증권 신후식 경제조사부장은 "원화가치의 상승으로 인한 수출감소와 가계대출 억제에 따른 내수 부진이 우려된다"면서 "다만 대중국 수출이 호조를 보이는 점이 위안"이라고 말했다.

김준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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