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르테논 신전 '사이버 재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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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에 걸친 약탈과 전란으로 폐허가 된 그리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이 가상현실 속에서 일부나마 아름다운 옛 모습을 되찾았다.

'영국 파르테논 대리석 반환 위원회'는 3차원 컴퓨터 시뮬레이션 기술을 동원해 런던의 대영박물관에 있는 56점의 파르테논 신전 대리석 조각상들을 원래 자리로 되돌렸을 경우의 모습을 재현했다.

이 위원회는 지난달 27일 '합쳐진 대리석'이라는 제목으로 영국 국회의사당에서 이를 전시했다. 관람객들은 긴 복도를 걸으며 마치 박물관에 온듯 유리 케이스 안에 컴퓨터 그래픽으로 재현된 고대 파르테논 신전의 온전한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이 '가상현실 파르테논'은 아테네에 짓고 있는 신(新)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을 설계한 스위스계 미국인 건축가 버나드 추미가 제작했다. 1674년 한 프랑스 화가가 그린 그림 등을 바탕으로 화려한 내부 장식과 조각상으로 가득한 과거의 모습을 재현했다.

이번 전시회는 대영박물관이 소유하고 있는 파르테논 대리석 조각상들,이른바 '엘긴 대리석'을 그리스에 돌려주자는 운동의 하나로 열렸다. 그리스 정부는 이 조각상을 되돌려 달라고 요구하고 있으며 상당수 영국인들도 이에 동조한다.

지난해 10월 영국인 2천여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40%가 반환에 찬성했으며 대영박물관에 계속 둬야 한다는 의견은 16%에 불과했다. 그리스에 영구임대하는 방안은 찬성률이 56%에 이르렀다.

하지만 대영박물관 측은 반환을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이집트나 이라크 등에서 가져온 다른 유물들의 반환요청이 연쇄적으로 일어날까 우려해서다.

이에 그리스 정부는 국제 여론에 호소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모금으로 약 6천만유로(약 7백20억원)의 기금을 마련해 아크로폴리스 아래에 짓고 있는 신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이다.

그리스 정부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때까지 건물을 완공하고, 엘긴 대리석을 돌려받아 이곳에 전시하겠다며 의욕을 보이고 있다. 내년 아테네를 찾을 전세계 사람들에게 조각상 반환 여론을 불러일으키겠다는 계산이다.

엘긴 대리석은 아테네에서 영국 외교관으로 일하던 토머스 부르스가 1801년부터 2년간 부인에게 선물하겠다며 조각상들을 건물에서 잘라내 가져간 것으로 1816년 대영박물관으로 넘어갔다.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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