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시댁으로 향하는 아내에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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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올해도 변함없이 아이들의 손을 잡고 남편을 뒤로한 채 고향을 향해 열차에 오르는 당신의 모습을 생각하면 애처롭고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어. 결혼해서 지금껏 부모님과 우리 가족을 위해 불평 한마디 없이 묵묵히 애 쓰고 있는 당신. 그 아름다운 마음을 말로 옮기기엔 나의 표현력이 너무 부족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명절이 되면 얼굴에 웃음꽃을 피우며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만 열차와 생활하는 우리의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는 것을 당신도 잘 알고 있을거야. 철도에 몸을 담고 기관차 승무를 한 지도 10년이 됐지만 가장 힘들고 외로울 때는 명절이라고 할 수 있어. 갖가지 선물 꾸러미를 들고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열차에 오르는 사람들을 보면서 가족을 찾아가는 그 모습에 흐뭇해 하면서도 가끔은 명절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지.

장남을 그리워하는 고향 부모님과 남편의 빈자리까지 애써 채우려고 노력하는 당신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억누를 수가 없어. 하지만 열차를 운전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답답한 마음을 달래주곤 했었지.

설.추석이 되면 고향에 한 번 제대로 못 간다고 투덜대는 내게 당신은 항상 이런 말을 해 주었어.

"당신과 함께 할 수 없는 것이 아쉽고 쓸쓸하지만 당신의 수고로 인해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준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라고 생각해요."

늘 싫은 표정 없이 나에게 용기를 주는 당신 때문에 새로운 힘이 솟아오르곤 했지.

이번 설에도 우리 가족이 함께 고향에 가진 못하지만 다른 많은 가족을 싣고 고향으로 안전하게 갈 수 있도록 안전운행에 최선을 다할 생각이야.

주름살이 더욱 늘어난 부모님의 얼굴, 그 앞에서 아이들과 세배를 하고 있는 당신의 모습, 어릴 적부터 꿈꿔왔던 철도 기관사의 멋진 모습까지 되새기며 한국철도 기관사로서 자부심과 긍지를 가진 마음으로 넉넉하고 안전한 명절이 되도록 더욱 힘을 쏟을 거야. 오늘도 풍성한 고향의 향기와 아름다운 당신의 마음을 담고 기관차에 오를게.

여보, 사랑해.

김재규<한국철도 대전기관차승무사무소 김천분소 기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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