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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우리의 미래상을 탐구하는 67년의 「캠페인」|대중문화 - 대표집필 이보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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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매스·미디어」
□□형성과 질을 좌우
18세기는 귀족문화의 시대, 19세기는 「부르좌」문화의 시대, 20세기는 대중문화의 시대라는 말을 들을 때가 있다. 이 말은 물론 서양문화의 역사적 발전에 적용되는 말이나 각 시대의 문화적 경향을 극히 적절히 표현하고 있다. 문화라는 말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으나 여기서는 소수의 창조적 「엘리트」가 만들어 놓고 시대·민족·계급을 초월해서 무한히 계승되는 인류의 유산이라는 뜻으로 파악되고 있다. 과거에 있어서는 이러한 문화는 그 향수의 범위가 한정되어 말하자면 특정 계층의 독점물이었다. 그러나 시대가 가까워질수록 문화향수의 범위는 차츰 확대되어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모든 사람의 향수의 대상이 되기에 이르렀다. 이와 같이 문화의 보급화 대중화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문화현상 및 그 산물이 대중문화라고 말할수 있다.
문화의 대중화, 이와 더불어 형성되는 대중문화가 나타나기는 최근 1백년동안의 일로 생각되고 있다. 여기에는 대체로 세 개의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 첫째로 정치적 민주주의의 발전, 둘째로 교육의 보급, 셋째로 근대산업의 기술발달이 그 요인이다. 민주주의 발전 및 교육의 보급은 대중의 지적 각성을 촉구하고 또한 그의 지적 수준을 향상시키에 이르렀다. 이와 더불어 이들 대중의 문화적 요소도 또한 당연히 높아졌다. 근대산업의 기술발달은 이러한 높아가는 대중의 문화적 요구를 충족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다.
즉 종래에는 대중의 경제력으로서는 접근하기 어려웠던 창조적 「엘리트」의 문화적 산물이 여러 가지의 형태를 취하면서-예하면 서적, 잡지, 미술품의 복사판, 악보-염가로 대량으로 대중에게 제공되고 소개된다. 특히 20세기에 들어와서 등장하여 단시일에 보급화하기에 이른 「라디오」 「텔리비젼」영화 「레코드」등은 종래의 신문, 잡지, 염가판의 출판물과 더불어 문화의 대중화 과정에 박차를 가하여 현대를 대중문화의 시대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만들어 놓았다. 대중문화의 형성에 있어 위에서 본 「매스·미디어」가 차지하는 위치는 크다. 어느 면에 있어 「매스·미디어」는 중추적 역할을 하고있다고 말할 수 있으며 따라서 대중문화 자체도 이러한 「매스·미디어」로서 생산되고 보급되는 문화라고까지 정의할 수 있을 정도이다. 원래 「매스·미디어」는 그 말이 뜻하듯이 매개의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하나의 수단으로서 대중문화의 형성에 있어 수동적 입장에서야 할 것이나 실제에 있어서는 극히 능동적 입장에 서 있다. 다시 말하면 「매스·미디어」는 단순히 문화의 전달에만 만족할 수 없고 또 주위의 사정은 만족하는 상태에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 우선 수단으로서의 우수성을 들 수 있다. 전달의 속도·범위에 있어 「매스·미디어」를 능가하는 것은 없다. 다음으로는 대중의 문화적 요구가 광대한 시장을 형성하고 있을 정도로 크기때문에 문화적 요소의 충족을 기업으로 하고 있는 업체들은 가장 편리한 「매스·미디어」를 이용하게 된다. 한편 「매스·미디어」도 하나의 기업인 이상 그것을 이용하려는 고객과 긴밀한 관계를 갖게 된다. 그리하여 「매스·미디어」는 그 자체의 기능적 성격과 기업적 성격으로 말미암아 대중문화의 형성뿐 아니라 그 문화의 질적 내용까지를 좌우할수 있는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통속화현상
□□영합적성격의 지양
이와 같이 최근에는 「매스·미디어」를 통해서 대중문화는 급속도로 형성돼가고 있는데 이 가정에서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것은 문화의 통속화 현상이다. 문화의 대중화는 곧 문화의 질적 수준의 저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만일 대중의 문화적 요구가 질적으로 높은 수준에 있다면 통속화 현상은 그다지 우려될 일이 못된다. 그러나 대중의 지적 수준이 나날이 높아가고 있다하더라도 그것이 급격히 소수의 창조적「엘리트」가 생산하는 문화적 유산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까지 높아간다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한편 대중의 입장에서는 질적으로 높은 가치는 인정하지만 그들의 지적 수준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렵고 또한 소화하기 어려운 문화에 대하여는 자연히 외면하게 된다. 이러한 대중의 문화유산에 대한 수용태도는 대중의 문화적 요구를 충족시키는 쪽에서 볼 때 제공하는 문화의 질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다.
이미 본 바와 같이 문화적 요구의 충족은 오늘날 광대한 시장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대중이 향수하는 문화는 대중의 기호에 맞는 영합적 성격을 띠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바로 이 「영합적 성격」이 문화의 통속화 현상을 일으키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대중문화는 그 형성과정에 있어 문화의 통속화 현상이 수반된다고 하여 대중문화 자체의 질을 처음부터 통속적인 것으로만 생각한다면 이것은 하나의 속단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대중문화의 모체는 소수의 창조적 「엘리트」의 문화유산이므로 이러한 유산이 깊은 뿌리를 박고 있는 문화적 전통이 서있는 곳에서는 자연 그 대중문화가 그렇지 못한 곳에 비할 때 질적으로 높은 수준을 지닐 수 있다 하겠다.
또한 대중문화가 영합적 성격을 띠고 있다하더라도 항상 그 성격에 만족하는 것도 아니다. 그 자체에도 창조적 욕구가 있고 대중의 지적 수준의 향상, 전달수단으로서의 「매스·미디어」상호간의 경쟁 또한 이 욕구에 외면할수 없으므로 대중문화도 인류의 문화유산에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독자적 문화유산을 만들어 낼 수도 있는 것이다.
모방과 안이
□□ 능력의 평가
그러면 우리나라의 대중문화는 어떠한 현상에 놓여있는가. 우선 순수문학에 대한 대중문학, 순수음악에 대한 대중음악, 연예영화등 대중문화를 구성하는 많은 요소 또 신문·출판물·「라디오」·「레코드」의 매개적 수단들의 등장은 대체로 약 반세기의 역사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으나 대중문화를 형성하는 세 요인 즉 민주주의의 발달. 교육의 보급, 근대적산업의 도입이 본격화한 것은 8·15해방후의 일이라 할 수 있고 특히 대중문화의 형성에 지대한 작용을 끼치는 「매스·미디어」가 나날이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은 더욱 최근의 일이므로 우리나라의 대중문화는 극히 짧은 시일에 형성되고 또한 형성돼가고 있는 현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대중문화가 단시일에 형성되고 또한 형성돼가고 있다는 사실은 비교적 장구한 시일에 서서히 그때 그때의 필요성에 의하여 단계적으로 발전해 온 선진국가의 대중문화와 비교한다면 우리의 대중문화를 졸속주의적 경향으로 이끌어가기 쉽다.
이미 이러한 경향은 대중이 사수하는 문화의 생산에 있어 모방주의 안이주의로서 나타나고 있다. 모방주의란 다른 나라의 대중문화의 소산을 그것이 크게 유행하고 있다는 오직 한가지의 이유만으로 그것의 가치 또는 이쪽의 소화능력, 수용태도에 대한 아무런 평가없이 우리의 대중문화에 도입하는 것을 말한다. 안이주의라 함은 우리대중의 저속적 취미에 영합하는 것으로 만족할 뿐 창조적 가치의 발견이라든가 또는 창조적 노력이 없는 것을 말한다.
물론 이와 같은 모방주의 안이주의가 우리대중문화의 형성에서 백주에 횡행하고 있는데에는 문화를 향수하는 대중측의 지적수준에도 큰 책임이 있으나 그 책임의 일단은 문화전달의 일을 담당하고 있는 「매스·미디어」에 있다. 왜냐하면 기업으로서의 「매스·미디어」는 높은 수익성을 추구하게 되고 그 추구의 결과로 대중에 영합하는 성격을 더욱 짙게 띠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러지 않아도 대중문화가 형성돼가는 과정에 있어서는 창조적 「엘리트」의 문화유산의 통속화 현상이 수반되기 마련인데 모방주의 안이주의로서 표현되는 졸속주의적 경향은 더욱 우리의 대중문화를 저속화시키고 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졸속주의적 경향을 우리의 대중문화가 띠지 않을 수 없게된데 있어서는 역사적으로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간과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오랫동안 서양의 귀족문화에 대비할 수 있는 문화로서 유교적 가치관을 지주로 하는 양반문화가 지배적 문화형태로서 존재하고 있었다. 이 양반문화는 일제의 침략과 더불어 그 명맥이 끊기고 일본을 통한 또는 일본에 의하여 여과된 서양문화가 들어오게 된다. 그러나 일제의 우민정책은 이 서양문화마저 제대로 받아들일 수 없게 했고 탄압으로부터 드디어는 말살로 뻗친 일제의 문화정책은 양반문화에 대치할 독자적 민족문화를 형성할 기틀마저 뺏어 버렸다. 이와 같이 민족문화 자체가 하나의 위기에 봉착하고 있을 때 대중문화가 우리 나름으로의 문화유산을 모체로 발전하기란 지극히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므로 문화의 대중화 과정이 일제의 탄압속에서도 민족적 자각과 더불어 서서히 싹트기 시작했다 하더라도 대중의 문화적 요구는 충족될 수 없이 오랫동안 기아상태에 빠져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다행히 해방과 더불어 이 상태에서 모면할 수 있는 여건이 주어지기는 하였으나 대중문화의 모체가 되고 자양이 될 우리의 문화유산은 도도하게 밀려들어 오는 외래의 문화유산 내지는 대중문화앞에 너무도 무력하고 한편 대중의 문화적 요구는 오랜 기아의 반동으로 나날이 치열하게 되었으므로 자연히 우리의 대중문화는 졸속주의적 경향을 띠고 형성돼나가지 않을수 없었다.
품위향상의 길
□□ 사명의식의 제고
우리의 대중문화가 이와 같이 졸속주의적 경향에서 형성돼가고 있는 것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이러한 현실은 시급히 시정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이 시정을 위하여는 대중문화의 품위의 향상이라는 것이 문제되지 않을 수 없고, 또 이 점이 바로 우리의 대중문화가 당면하고 있는 하나의 과제라고도 생각된다.
이에 있어서는 대중문화의 형성에 직접·간접으로 참여하고 있는 당사자의 자각이 크게 촉구된다. 대중에는 방향감각이 없다는 말이 있다. 그러므로 방향을 제시하고 이들을 이끄는 역할은 자연히 이들 대중문화 형성의 당사자에 주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중문화가 지닌 시장성으로 말미암아 영합적 성격 내지는 대중과의 타협이라는 일이 나타나기 쉽다. 그러므로 대중문화의 역군들의 자각과 자율적 규제라는 일이 가장 바람직한 일이나 이러한 자각과 자율적 규제가 그다지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경우에는 타율적 규제라는 것도 대중문화의 품위향상에 있어서는 하나의 수단이 될수 있다. 우리나라에도 여러 가지 명칭의 대중문화에 대한 타율적 규제기관이 있다.
그러나 타율적 규제는 그 한계를 어디까지에 두느냐에 따라 도리어 대중문화의 형성을 크게 장해 내지 위축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기 쉽다. 뿐만 아니라 국가의 문화정책 여하에 따라서는 타율적 규제는 국가의 정책적 도구로 화해 버리고 표현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말살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그러므로 타율적 규제는 전혀 없을 수 없다 하더라도 그 규제범위는 되도록 작을수록 좋다. 또한 대중문화의 품위가 향상되려면 대중문화라고 하면 덮어놓고 저속하다고 외면하는 부류의 인사들의 대중문화에 대한 태도도 달라져야 한다. 현대의 문화가 대중문화적 특징을 띠고 있는 이상 이러한 인사들도 대중문화 형성의 과중에 휩쓸려들어가 있는 것이며 그로부터 빠져나갈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외면이 아니라 적극적 참여가 요구되며 이러한 참여를 통하여 그들에게 있다고 생각되는 문화창조의 「에너지」가 대중문화의 형성에 이바지 된다면 그와같이 대중문화의 품위를 향상하는 일은 또 없을 것이다. 예를 들면 미술에 있어서는 회화·조각이외에 응용미술이라는 것이 하나의 독자적 분야를 개척하고 있다. 이 응용미술은 대중의 생활용품 내지 생활의 주변을 미화하는데 크게 이바지하고 있다. 만일 이러한 응용미술로써 우리의 생활이 미화된다면 그것은 우리의 심미적 감각까지도 함양하게 된다고 말할 수 있다. 또 음악에 있어서는 환경음악이라는 것이 있다.
여러가지 형식의 음악이 그때 그때의 환경에 알맞게 흘러나옴으로써 대중의 음악에 대한 감각을 세련시킬 수 있다. 이럼으로써 오늘날 대중음악에서 느낄 수 있는 것과 같은 선정적 직설적 퇴폐적 음악만이 대중이 향수할 수 있는 음악의 전부라는 생각을 서서히 무너뜨릴 수 있다. 말하자면 순수문화의 역군이라고 자부하는 인사들의 창조적 대안없이 대중문화의 품위의 향상이란 어려운 것이다.
끝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매스·미디어」의 역할이다. 대중문화의 형성에 있어 「매스·미디어」는 절대적 위력을 갖고 있으므로 대중문화의 품위향상에 있어서도 그 끼치는 영향 또한 절대적이다. 그러므로 대중문화의 형성을 담당하고 있다는 사명감에 대한 자각, 이에 따르는 자율적 규제, 때로는 수익성을 초월한 지도성의 발휘가 크게 요구된다.
만일 이러한 요구가 여러 가지 장해에도 불구하고 충족될 수 있다면 대중문화의 품위향상은 「매스·미디어」를 통하여 가장 효과적으로 달성된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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