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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까지 몰려온다, 이번엔 산사태 공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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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중국 인민해방군 병사가 22일 강진에서 살아남은 60세 여성을 업고 쓰촨(四川)성 바오싱(寶興)현 링관(靈關)진의 도로를 뛰어가고 있다. [링관 로이터=뉴시스]

22일 오후 1시30분. 중국 쓰촨(四川)성 야안(雅安)시 룽먼(龍門)향 주민들은 마지막 생존자라도 구하기 위해 여진 공포도 잊고 구조활동을 했다. 이곳은 20일 오전 발생한 규모 7.0 강진의 진앙지인 루산(蘆山)현 부근이다. 산이 무너져 내려 구조대가 이틀 동안 접근을 못하다 22일 오후 1시쯤 도로가 개통됐다. 2만3000여 명의 주민은 외부로 통하는 길이 막히자 너나 할 것 없이 마을 단위로 이웃의 구조작업을 하느라 밤잠을 설쳤다. 주택은 대부분 무너졌다. 경사가 심한 주변 산은 곳곳이 무너져 내려 집채만 한 바위가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

오토바이로 기자를 루산에서 룽먼까지 태워 준 주민 우지밍(武吉明·28)은 “여진 공포로 3일간 잠을 못 잤다. 길가에 텐트를 치고 자는데 밤에는 너무 춥다”고 호소했다.

 인간이 물 없이 버틸 수 있는 생물학적 한계점인 마(魔)의 72시간을 앞둔 22일, 야안시 곳곳에서는 구조대가 체력의 극한에서 구조작업에 열중했다. 지진으로 22일 오후 기준 188명이 사망하고 25명이 실종됐다. 부상자는 1만1460명으로 파악됐다.

 “꿈은 잃었지만 생명을 얻었어요.” 22일 쓰촨성 청두(成都)에 있는 화시(華西)병원에서 만난 쑨샤오친(孫小琴·여)은 잠든 딸(11) 옆에서 눈물을 흘렸다. 중국 최고 무용가를 꿈꾸던 딸이 지진으로 오른쪽 다리를 잃은 데 대해 목숨이라도 건진 걸 감사해했다.

죽·짠지 먹는 리커창 총리 리커창 중국 총리가 21일 강진 피해를 입은 중국 쓰촨성 야안시 루산현의 구호 작업을 지휘하던 도중 현장 텐트 숙소에서 죽과 짠지로 아침 식사를 하고 있다. 일각에선 제스처라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중국 CCTV 화면 캡처]

그는 아침 식사 도중 지진을 만났다. 순간 그는 네 살짜리 아들을 안고 뛰었지만 뒤따라오던 딸은 무너진 지붕에 발이 깔렸다. 그는 손톱이 다 빠지도록 한 시간여 동안 무너진 벽돌조각 등을 걷어내고 딸을 구해 병원으로 옮겼다. 그러나 딸은 혼절했고 바로 다리절단 수술을 받아야 했다. 딸이 수술에서 깨어나자 그는 제일 먼저 “앞으로 엄마가 너의 다리가 되겠다”고 말했다.

 모든 피해지역에 구조의 손길이 간 것은 아니다. 22일 신경보(新京報)에 따르면 지진 피해가 집중된 루산현과 바오싱(寶興)현을 중심으로 31개 향(鄕)·진(鎭)이 여전히 산사태와 토사 등으로 외부와의 육상 교통이 끊겼다.

22일 밤부터 이들 지역에 비가 예고되면서 산사태 등 추가 피해도 우려된다. 루산현의 경우 이미 산사태 적색 경보까지 내려졌다. 인민해방군 소속 헬기는 21일까지 바오싱현에서 중상자 11명을 후송하고, 의료진과 구조대 109명을 투입했지만 협곡 지역이어서 헬기의 이착륙이 쉽지 않았다.

쓰촨성에 있는 핵 시설과 댐이 이번 지진으로 영향을 받았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중국핵공업집단공사는 22일 공사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쓰촨성 내 9개 핵 관련 시설이 주말에 여러 단계의 충격파를 경험했다면서 안전 점검에 나섰다고 밝혔다.

 쓰촨성 지질광업국의 판샤오(范曉) 총공정사도 이날 “이번 지진 피해지역 부근 칭이(靑衣) 강의 둑이 충격을 받았다. 댐이 붕괴되지는 않았지만 여름 홍수기가 다가오고 있어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진 구조작업이 진행 중인 가운데 22일 오후 5시11분 네이멍구(內蒙古) 퉁랴오(通遼)시 부근에서 규모 5.2의 지진이 발생했다고 신화통신이 보도했다. 피해 상황은 알려지지 않았다. 네티즌들은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에서도 흔들림이 감지됐다고 전했다.

 러시아 구조대 198명이 외국 구조대로는 처음으로 22일 쓰촨공항에 도착했다. 중국 외교부는 전날 “현재 충분한 구조·의료 능력을 갖추고 있고 물자도 충분해 당분간 외국 구조대의 도움을 받지 않을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러시아 구조대는 이날 외교부 직원의 안내로 지진 피해 지역인 바오싱현으로 이동했다. 러시아 구조대에 예외를 적용한 것이다. 46명의 주민이 사망하거나 실종된 이곳은 도로 곳곳이 끊겨 구조작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취임 후 각각 첫 방문지로 상대국을 선택하면서 역대 최고 수준의 밀월기를 맞고 있다.

정용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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