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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까지 땅 흔들흔들 … 길 끊겨 마취제 없이 수술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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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1일 중국 쓰촨(四川)성 야안(雅安)시를 초토화한 규모 7.0의 강진으로 집이 무너지자 한 여성이 딸을 안은 채 울고 있다. [야안 로이터=뉴시스]

규모 7.0의 강진이 휩쓸고 간 지 꼭 33시간이 지난 21일 오후 5시4분, 중국 쓰촨(四川)성 야안(雅安)시 루산(蘆山)현 상리(上里)전. 전날 오전 8시2분 발생한 지진으로 184명이 사망하고 24명이 실종(21일 오후 10시 현재)된 현장은 8만6000여 명이 사망한 2008년 쓰촨 대지진 참상 그대로였다. 가는 곳마다 집들이 폭격을 맞은 것처럼 무너져 내렸고 주민들은 여진 공포에 떨고 있었다. 부상자는 1만1826명에 달했다.

 이곳에서 만난 주민 양메이란(羊梅然)도 죽음의 공포에 질려 있었다.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데 집이 그네처럼 흔들렸다. 순간 온 가족이 밖으로 뛰었다. 죽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다.” 인터뷰가 1분쯤 진행됐을까. 갑자기 사방에서 “빨리 나와(快出來)”라는 비명이 들렸다. 순간 기자도 공중에 붕 뜬 기분이었다. 다리도 후들거렸다. 이날 오후 5시5분에 루산현과 청두(成都)시 경계에서 발생한 규모 5.4의 여진이었다. 이날 오후 5시까지 1445차례 여진이 계속됐다.

 루산현에서는 가옥 1만여 채가 무너져 내렸다. 루산초등학교 정문 앞에 10여 간으로 길게 지어진 단층짜리 체육관 건물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부서졌다. 이 학교 교사 류민(劉敏)은 “다행히 토요일이어서 수업이 없었기 때문에 학생들은 다치지 않았지만 일부 선생님들은 부상하기도 했다”며 “2008년 대지진에 이어 또 지진이 발생해 학생들이 공포에 떨고 있다”고 말했다. 규모는 2008년 지진의 8.0보다 낮았지만 진앙지가 지하 13㎞에 불과해 파괴력이 컸다. 주민들은 아침 식사나 잠자리에 있다가 대피했다. 알몸으로 뛰어나온 젊은 남녀 한 쌍이 이불 하나를 챙겨 나와 함께 두르고 있는 모습도 목격됐다.

 지진 현장 구조작업은 리커창(李克强) 총리가 진두 지휘하고 있다. 지진 발생 직후 전용기와 헬리콥터를 이용해 피해현장에 도착한 그는 21일 오전 간이천막에서 죽 한 그릇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구조현장을 누비며 “앞으로 24시간 이내에 모든 생존자를 구하라”고 독려하고 있었다. 베이징(北京) 정치분석가들은 “이번 지진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을 중심으로 한 새 지도부의 국가위기관리 시험대이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구조작업을 펼치고 있다”고 말했다. 루산현에는 현재 6000여 명의 군 병력이 급파돼 구조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루산현 부근 바오씽(寶興)현 링관(靈關)전, 융푸(永富)향, 우롱(五龍)향 등지는 도로가 무너져 내리고 전기가 끊겨 구조대 접근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이 때문에 주민 4만여 명이 사는 링관진에서는 지진 부상자들이 큰 병원으로 후송되지 못하고 간이 병원에서 마취약도 없이 수술을 받고 있다. 부상자들이 몰린 루산현 인민병원에는 여진 우려 탓에 병원 앞 공터에 임시로 천막을 세우고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었다.

 기적 같은 일도 일어나고 있다. 루산현 주민 저우한쥔(鄒漢君·49·여)은 전날 오후 늦게 폐허가 된 집에서 구조에 나선 이웃 주민들에게 발견됐다. 발견 당시 저우는 이미 숨진 상태였지만 그녀가 품에 안고 있던 일곱 살 난 아들 양푸전(楊福珍)은 상처 하나 입지 않았다. 링관진 주민 황쭝민(黃忠民)의 2층집도 이날 지진으로 무너졌다. 외출했다 급히 귀가한 황은 이웃들과 함께 6시간이나 잔해 더미를 헤친 끝에 어린 아들 샤오(黃肖)를 구조해내기도 했다.

 한편 중국지진센터(CNEC)는 21일 이번 지진은 쓰촨성을 가로지르는 룽먼(龍文)산 남단 단층에서 일어났다고 밝혔다. 2008년 쓰촨 대지진 역시 이 지진대에서 일어났으며 당시 진원지인 원촨(汶川)은 루산에서 200㎞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이 때문에 원촨 지진의 여진이 계속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정용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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