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선은 문상으로 주세요" 암호 뺨치는 10대 신조어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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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 이번 생선은 문상으로 주세요.”

직장인 송모(29ㆍ여) 씨는 얼마 전 초등학생 조카의 문자메시지를 받고 당황했다.

생선을 문상으로 달라는 게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조카에게 뜻을 되물은 송 씨는 ‘생선’이 ‘생일선물’, ‘문상’이 ‘문화상품권’을 의미한다는 답변에 다시 한 번 놀랐다.

2000년대 초 PC통신이 유행하던 시절에는 ‘하이루(안녕)’ ‘방가방가(반가워)’ 같은 신조어가 유행했다.

파격이기는 하지만 뜻은 추측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반면 10여년이 지난 지금, 청소년들이 주로 사용하는 신조어는 종류가 무궁할 뿐더러 원래의 말에서 변형된 정도도 심각해 성인들이 뜻을 알기 어려운 실정이다.

현재 유행하고 있는 10대들의 신조어에는 특히 준말이 많다고 헤럴드경제가 19일 보도했다.

헤럴드경제에 따르면 ‘버카충’은 버스카드 충전, ‘제곧내’는 제목이 곧 내용, ‘행쇼’는 행복하십시오, ‘먹방’은 먹는 방송을 뜻한다.

길지 않은 말도 무조건 줄이고, 긴 문장을 한 단어로 압축하기도 해 뜻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영어나 한자 등 외국어를 이용한 표현도 눈에 띈다.

게임 중에 아빠가 들이닥쳐서 혼났을 때는 ‘파덜어택’, 학벌ㆍ집안ㆍ능력 등 모든 방면에서 특출하지만 외모가 아쉬운 여자는 ‘버터페이스(but her face)’라고 한다.

또 ‘광탈’은 빠르게 탈락하다, ‘sc’는 센 척을 나타낸다.

‘찐찌버거(찐따, 찌질이, 버러지, 거지)’, ‘아벌구(아가리 벌리면 구라)’ , ‘여병추(여기 병신 추가요)’, ‘잉여(아무 일 없이 빈둥빈둥 노는 사람)’, ‘화떡녀(화장을 떡칠한 여자)’ 등 비하의 뜻을 담은 신조어들도 심심치 않게 있다.

청소년들이 비속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한다는 점은 우려되는 대목이다.

청소년들의 신조어는 청소년 사회 내부에서만 사용되는 데 그치지 않고 인터넷, 방송 등을 통해 전 사회로 퍼지고 있다.

온 가족이 함께 보는 공중파 방송에서는 ‘미존(미친 존재감)’이란 자막이 뜨고 대중가요에는 ‘멘붕(멘탈 붕괴)’이란 가사가 등장한다.

신조어에 무방비로 노출된 성인들은 그야말로 ‘멘붕’을 겪는다. 청소년에겐 재미있는 신조어지만 어른들에겐 의미를 알 수 없는 외계어다.

하지만 어른이라고 청소년들의 신조어를 외면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부모는 자식과, 직장 상사는 부하 직원과 소통하지 못할까 봐 신조어를 공부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시작한다. 소수의 사회 구성원이 다수를 소외시키고 불안에 빠뜨리는 상황이다.

김선철 국립국어원 공공언어지원단 연구관은 “청소년들이 자기들만의 가치 공유를 위해 은어를 만드는 것은 세대마다 반복되는 현상이지만 요즘은 청소년들이 자기들끼리만 신조어를 사용하지 않고 어른들에게도 쓰면서 소통이 안 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 연구관은 “사용자 집단을 벗어나버리면 은어가 아니라 일반어가 되는데, 은어로 만들어진 언어를 일반적으로 쓰자고 하면 소통에 문제가 생긴다”며 “지금의 청소년 신조어들은 사회 구성원, 언어 사용자들 간의 소통에 분명히 방해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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