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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톳길엔 맨발이 최고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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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북동쪽 끄트머리에 해발 429m의 야트막한 산이 있다. 산줄기가 닭발처럼 뻗어 있다고 하여 계족산(鷄足山)이다. 계족산은 그러나 맨발로 오르는 산으로 더 유명하다. 등산로를 따라 황톳길이 길게 이어져 있어 산에 들면 누구나 스스럼없이 맨발이 된다. 산에 황톳길을 깐 주인공은 엉뚱하게도 주류업체 선양의 조웅래(55) 회장이다. 길이 좋고 사람이 좋아 회사와 전혀 상관없는 산에 황토를 깔고, 사람을 불러모으는 괴짜 CEO다. 계족산 황톳길에서 맨발로 그와 만났다.

대전 계족산을 둘러싼 14.5㎞의 황톳길에 오르자 조웅래 회장이 함박웃음을 지어보였다. 그에게 있어 맨발로 걷는 건 만병통치약이었다.

“명품 등산화보다 벗고 걷는 게 좋아요”

조웅래. 그의 명함에는 회장 직함이 뒷면에 있다. 앞면에는 대신 맨발의 캐리커처가 새겨져 있다. 첫인상도 주류업체 회장이 아니라 영락없이 산사람이다. 아니나 다를까. 조 회장은 계족산 입구에 다다르자 거침없이 신발부터 벗었다. “자, 여기서부터는 맨발로 갑시다.”

조 회장은 대전에서 ‘고마운 회장님’으로 통한다. 스스로는 ‘엉뚱한 오너’라 부른다. 처음에는 손가락질도 더러 받았단다. 휴대전화 컬러링 업체를 운영하며 ‘성공 신화를 썼다’는 평가도 받았다. 그러다 2004년 대전 지역의 소주회사 선양을 인수했다. 대전 지역에서 40%까지 떨어져 있던 시장점유율을 반등시킨 뒤 그가 제일 먼저 한 건 계족산에 황토를 까는 일이었다.

“처음엔 주변에서 난리였어요. 직원들이 ‘비 오면 쓸려나갈 흙에 왜 돈을 버리느냐’고 반대했고, 지역 주민들은 ‘계족산으로 술을 팔 셈이냐’고 의심했어요.”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뚝심으로 밀어붙였다. 선견지명이 있었던 건 아니다. “2006년 어느 날 계족산을 거닐다 신발을 벗었는데 ‘이거다’ 싶더라고요. 발은 피곤했지만, 머리가 개운했어요. 몸이 후끈후끈한 게 며칠이나 계속됐죠.”

어느 값비싼 등산화보다 맨발로 걷는 것이 더 몸에 좋다는 것을 몸소 체험한 것이다. 조 회장은 자신의 놀라운 경험을 남들에게도 전하고 싶어 2006년부터 매년 계족산 맨발축제를 열었다. 14.5㎞에 이르는 계족산 임도에 전북 김제에서 공수한 황토를 깔고, 맨발 마라톤 대회와 숲속 음악회 등 문화행사를 벌였다. 맨발축제는 올해도 다음 달 11, 12일 이틀에 걸쳐 열린다.

“사람들이 저더러 봉이 김선달보다 더한 놈이래요. 계족산에 땅 한 평 없으면서 자기 것처럼 한다고요.”

황톳길을 오가는 시민들은 이제 조 회장을 만나면 기꺼이 감사 인사를 전한다.

황톳길 중턱에서 조 회장.

맨발축제, 1만 명 참가 행사로 성장

조 회장이 8년 동안 계족산 황톳길 조성과 관리에 들인 돈은 40억원에 달한다. 대전 지역에서 65% 이상의 소주시장 점유율을 가진 주류회사 오너라 해도 만만치 않은 금액이다. 마라톤 대회에 참가비가 있지만, 돈벌이 수단은 아니다. 외국인과 1985∼2004년생 한국인은 참가비가 없다. 젊은이들이 축제를 통해 더 건강해지기를 바라서다. 올해는 규모를 더 키워 미술심리 치료 행사를 신설했고, 체험 행사도 늘렸다. 마라톤 완주자 2000명에게는 그들의 얼굴을 술병에 새긴 술을 선물로 준다.

“돈 생각했으면 벌써 관뒀죠. 영업보다 중요한 건 사람의 마음을 사는 일이에요.”

하여 그는 소주 영업을 위해 술집에 앞치마를 선물하거나 대학가에 무료로 술을 퍼 나르지 않았다. 대신 계족산 맨발축제를 문화 콘텐트로 키웠다. 첫해 이용객이 1000명에 불과했던 축제는 이제 1만 명 이상 참가하는 대형 행사로 거듭났다. 축제 참가자 대부분이 외지에서 온 손님이고, 외국인도 평균 1000명에 이른다.

조 회장은 베테랑 마라토너이기도 하다. 마라톤 풀코스 완주 경험이 40회나 된다. 주류회사를 운영하느라 날마다 술을 마시면서도 그가 건강을 유지하는 이유다. 좋은 것은 반드시 나누고야 마는 그는 회사 규정에도 제 고집을 새겨뒀다. 선양에서 정직원이 되려면 필수로 계족산 10㎞를 완주해야 한다. 외부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 완주하는 직원에게 기록에 따라 보너스를 제공하는 인센티브 제도도 있다.

조 회장은 시간이 날 때면 고민 없이 계족산으로 향한다. 맨발로 걷고 뛰다 보면 산에서 내려올 때쯤 모든 고민이 사라져버린단다.

“관리가 아니라 즐기러 와요. 어차피 관리는 자연의 몫이거든요. 황토는 물기를 머금어야 촉감도 좋아지고, 아름다운 빛깔도 생기는데, 비 온 뒤 황토는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죠. 메마른 황토도 나름의 맛이 있고요. 작은 돌이 맨발에 닿으면 따끔따끔한 것이 지압효과가 있어요. 누가 계족산에 대해 물으면 전 두말 않고 일단 함께 가자고 해요. 신발을 벗는 순간 다들 감탄하던걸요.”

글=백종현 기자
사진=신동연 선임기자

●계족산 맨발축제(barefootfesta.com)

계족산 황톳길에서 다음 달 11, 12일에 열린다. 11일에는 에코힐링 선양 문화예술제가, 12일에는 에코힐링 선양 마사이마라톤이 진행된다. 문화예술제에서는 맨발 도장 찍기, 황토벽화, 나무인형 만들기 등의 체험행사와 난타, 클래식 공연 등의 각종 문화행사가 벌어진다. 마사이마라톤은 7㎞ 맨발걷기와 13㎞ 맨발달리기 두 종목으로 진행된다. 참가비 7㎞ 7000원, 13㎞ 1만5000원. 접수 마감은 오는 25일이다. 산 부근에 주차시설이 부족한 편이지만, 대전복합터미널로부터 버스로 40분 거리다. 042-530-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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