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얘들, 무서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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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왼쪽부터 18세 김효주, 16세 리디아 고, 18세 아리야 주타누가른.

요즘 여자 프로골프 코스에 꽁지머리에 콧수염을 기른 동남아시아 남자가 종종 나타난다. 지난 2월 열린 혼다 LPGA 타일랜드에서, 모로코에서 벌어진 유럽여자골프투어(LET) 릴리암컵에서, 18일(한국시간) 하와이 호놀룰루 인근 코올리나 골프장에서 벌어진 롯데 챔피언십에서도 이 인물이 나타났다.

 태국인 솜본 주타누가른(60)이다. 그의 두 딸 모리야(19), 아리야(18)는 프로골퍼다. 동생이 더 잘나간다. 아리야는 혼다 LPGA 타일랜드에서 다 잡았던 우승을 마지막 홀 트리플보기로 날려버렸다. 그 때문에 박인비가 약간 운 좋게 우승했다.

 역전패 후 언니를 안고 눈물을 흘리던 아리야는 모로코에서 올 시즌 LET 첫 우승을 하더니 롯데 챔피언십에는 월요 예선을 거쳐 출전했다. 대회 조직위는 동갑내기 김효주(18·롯데), 최연소 LPGA 투어 우승을 기록한 뉴질랜드 교포 리디아 고(16)와 한 조로 아리야를 묶었다. 차세대 골프 여왕 후보가 모인 조라 관심이 많았는데 솜본은 라운드 내내 미소를 지으면서 경기를 봤다.

 아리야가 1라운드에서 무려 8언더파를 치며 단독 선두에 올랐다. 동반자보다 평균 30야드 정도 앞서는 장타가 돋보였다. 드라이버-웨지-퍼터를 가지고 전반 30타를 쳤고, 14번 홀(파5·498야드)에서 5번 우드로 2온에 성공해 이글을 잡는 장면이 백미였다. 아리야는 “페어웨이가 넓어 마음이 편안했고 자신 있게 드라이버를 휘둘렀다. 3, 4m짜리 버디를 몇 개 놓쳤는데 퍼팅 연습을 더 하면 더 좋은 성적을 낼 것 같다”고 말했다.

 김효주는 6언더파 공동 4위였다. 그는 경기 전 “누구와 함께 경기하는지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내 칠 것도 바쁜데 옆 사람이 어떻게 치는지 신경 쓸 시간도 없다. 리디아 고는 퍼터를 잘하는 것 같기는 하다”고 말했다. 바로 옆에서 핵폭탄이 터져도 꿈쩍도 하지 않을 돌부처라는 별명을 들었던 이선화(한화)가 연상된다. 김효주는 5번 홀까지 버디 4개를 잡은 아리야에게 아랑곳하지 않고 서서히 점수를 줄여나갔다. 13번 홀까지 6언더파가 됐는데 “이후 집중력이 떨어져 퍼트를 넣지 못했다”고 김효주는 말했다.

 리디아 고는 1언더파 공동 52위였다. 신지애처럼 자로 잰 듯 샷을 하던 그는 이날 컨디션이 좋아보이지 않았다. 퍼트도 그답지 않았다. 아리야는 “아마추어 때부터 함께 지낸 친구들이 다 잘 쳐서 기분 좋게 경기했다”고 말했다. 리디아 고는 전혀 기분이 좋아보이지 않았다.

 첫날 성적이 좋다고 아리야가 최고라고 말할 수는 없다. 지난해 세 선수는 US 여자 아마추어 오픈에서 일합을 겨뤘다. 김효주가 예선 라운드를 8언더파 1위로 통과했고, 리디아 고가 7언더파 2위, 아리야는 5언더파 공동 3위였다. 매치플레이로 치러진 본선에서는 김효주가 8강에서 탈락했다. 4강에서 아리야를 3홀 차로 여유있게 제친 리디아 고가 우승했다.

 한편 서희경(27·하이트진로)이 7언더파 공동 2위, 지난해 우승자 미야자토 아이(28·일본)는 5언더파 공동 6위에 자리했다. 박인비(25·스릭슨)는 세계랭킹 1위로 맞은 첫 라운드에서 2언더파를 기록했다. “하와이 그린에선 퍼트를 잘 못한다”고 박인비는 말했다. J골프가 19일 2라운드 경기를 오전 7시30분부터 생중계한다.

호놀룰루=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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