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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아틀리에, 집 앞 텃밭 … 작지만 큰 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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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단순해 보이나 쓸모가 돋보이는 강화도 외콩집. 집 외부는 아연 패널과 시멘트 사이딩(외장용 자재)으로 마감했다. 한쪽 벽의 빨간 네모가 경쾌하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2년 전 시작된 ‘땅콩집’ 열풍은 한국 건축시장의 흐름을 바꿔놓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한 필지에 두 채의 집을 지어 비용을 절약하는 땅콩집은 그 동안 단독주택을 열망만 하던 이들에게 ‘나도 집을 지을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줬다.

 지난해 인천 강화군 불은면에 들어선 ‘강화주택’의 건축주 역시 땅콩집에 관련된 여러 글을 읽으며 집에 대한 꿈을 구체화한 경우다. 자신의 경제적 조건 안에서 소박하지만 실용적인 집을 짓고 싶어 ‘땅콩집 건축가’로 알려진 이현욱 소장(이현욱좋은집연구소)을 찾아갔다.

 15일, 봄기운이 살랑대는 강화도 바닷바람을 맞으며 강화주택에 도착했다. 회색 징크(Zinc·아연패널)로 마감한 외관은 단출한 편이지만 비슷비슷한 집들이 늘어선 시골 마을에서 단연 눈에 띈다. 길가 쪽 벽면의 빨간 색 네모가 경쾌한 느낌을 더한다.

 “한 달만 지나면 주변이 꽃으로 아름답게 뒤덮일 텐데, 조금만 천천히 오시지.”

 마당에 뿌릴 꽃씨를 고르고 있었다는 건축주가 기자 일행을 반갑게 맞았다.

단단한 느낌의 자작나무로 마감한 외콩집 내부. 따뜻한 분위기가 감돈다. 깔끔한 게 좋아 전등, 문 손잡이 등의 장식도 가능한 한 심플한 것을 썼다.

 ◆퇴직금으로 지은 집=67세의 전직 미술교사인 건축주는 강화도가 고향이다. 학업을 위해 고향을 떠난 지 수십 년이 됐지만, 구순 되신 친정어머니가 이곳을 굳건히 지키고 계신 덕에 자연스럽게 귀향을 꿈꾸게 됐다.

 은퇴와 함께 고향집 인근에 땅을 마련하고, 퇴직금과 저축 등을 합쳐 1억 2000만원 정도를 집짓기 예산으로 잡았다. 장성한 아이들은 서울에 두고 혼자 내려와 살 집이었기에 90m²(약 27평)의 집이면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손주들이 찾아와 맘껏 뛰놀 공간이 필요하겠다” 싶어 연면적을 115m²(35평)로 넓히면서 공사비가 조금 늘어났다. 집을 짓는 데 든 총 비용은 공사비만 1억 4000만원, 설계비 1500만원을 합쳐 1억 5500만원 정도다.

 이 집은 외관이나 내부 자재 등은 땅콩집과 유사하지만, 한 세대만 살 수 있도록 지어져 ‘외콩집’으로 불린다. 현재까지 200호 가까이 지어진 땅콩집의 기본 도면을 바탕으로 하되, 건축가와 수 차례 의견을 교환하며 자신만의 취향이 반영된 공간을 만들어냈다.

 우선1층에는 손님을 맞을 수 있는 널찍한 거실과 주방, 그리고 휴게실을 겸한 아틀리에가 들어섰다. 2층에는 침실과 손님방, 서재로 쓸 수 있는 다락방 등이 자리잡았다. “은퇴를 하면 나만을 위한 작업실 하나 만들어, 작품활동에 집중해보겠다”는 꿈이 반영됐다.

 만족스러운 부분은 단열이다. 유난히 추웠던 지난 겨울 혼자 머물면서 난방을 트는 게 부담스러웠지만, 생각보다 난방비가 많이 들지 않았다.

 이현욱 소장은 “목조주택 자체가 단열에 유리한 측면이 있다. 거기에 비싼 단열재를 사용하기보다 창문의 크기와 개수 등을 한정해 단열 효과를 낸다”고 설명했다. 창의 총수는 6개 이하, 크기는 1.8m 이하로 하는 게 땅콩집의 기본 사양이다. 특히 이 집은 1층과 2층을 연결하는 계단 사이에 슬라이딩 도어를 달아 층별로 단절된 난방이 가능하도록 했다.

 ◆몸을 움직이며 사는 삶=퇴직을 앞둔 이들 사이에는 요즘 이런 농담이 오간다고 한다. 은퇴 후 2~3년은 ‘하바드생(하루 종일 바쁘게 돌아다녀서)’, 그 뒤 얼마간은 ‘동경대생(동네 경로당밖에 갈 데가 없어서)’, 그리고 그 뒤는 ‘목사(목적 없이 사니까)’라는 이야기다.

 건축주 역시 은퇴 후 한동안은 모임과 문화생활에 바빴지만, 곧 한가해지면서 공허함에 시달렸다. 집을 짓고 나니 가장 좋은 건 몸을 움직여 해야 하는 일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집안 정리만으로도 만만치 않은데다 집 앞 텃밭에서 채소를 키우고, 꽃씨를 뿌리고, 인근 풀밭의 잡초까지 정리하다 보면 하루가 금방이다.

 “평생 머리를 쓰며 살았으니, 노년엔 몸을 움직이며 사는 삶도 괜찮은 것 같아요.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강화도로 이사 와 집 짓고 함께 살아보자고 설득하는 중입니다.”

글=이영희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건축가 이현욱=1970년생. 경원대 건축학과 졸업. 2001년부터 ㈜광장건축사사무소의 대표로 일했으며, 현재 이현욱좋은집연구소를 이끌고 있다. 남양주 에코빌리지, 땅콩집, 아트원극장, 제니퍼소프트 사옥 등을 설계했다. 저서로 『땅콩집, 두 남자의 집짓기』(2011)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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