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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갈린 정책 신호 … 헷갈리는 기업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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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추진 중인 경제민주화 법안이 대기업을 너무 몰아친다는 취지로 해석될 수 있는 언급을 했다. 박 대통령은 15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경제민주화 법안에는 공약이 아닌 것도 포함돼 무리한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대기업을 전방위로 압박하는 경제민주화 법안이 정부와 국회에서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마치 경제민주화의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듯한 언급을 한 것이다.

 실제 새 정부 출범 이후 경제민주화라는 이름으로 대기업을 쥐 잡듯 몰아붙이는 조치들이 봇물 터진 듯 쏟아져 나오고 있다. 박 대통령 언급대로 국회는 최근 재벌 총수의 사익편취 금지라는 명분 아래 재벌 및 총수를 압박하는 조치를 잇따라 쏟아내고 있다. 정부에서도 경제민주화 법안을 집행하는 공정거래위원회는 물론이고 감사원과 국세청까지 나서고 있다.

 속도도 빠르다. 대기업 총수와 임원의 개별 연봉 공개를 골자로 하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법 개정안’(연봉공개법)은 이미 지난 9일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했다.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의 입증 책임을 당국이 아닌 대기업으로 돌린 ‘공정거래법 개정안’도 정무위에서 논의 중이다. <본지 4월 12일자 1면> 또 감사원은 “증여세 완전포괄주의가 2004년 도입되면서 기업 간 일감 몰아주기에 대해 증여세를 물릴 수 있었는데도 국세청과 기획재정부가 법을 제대로 집행하지 않았다”며 최근 국세청에 현대자동차·CJ·롯데쇼핑 등 9곳에 증여세를 부과하라고 통보했다. 지난 12일 구성된 여야 6인협의체의 ‘대선 공통공약 입법의제’에도 경제민주화 관련 입법이 대거 포함됐다.

새누리당은 300억원 이상의 불법적 이익에 대해 15년 이상의 징역형을 추진하고 있다. 박 대통령도 경제사범에 대한 사면권 불행사 원칙이 확고하다.

 박 대통령이 과잉입법을 우려했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최근 흐름을 얼마나 바꿔놓을 수 있을지 미지수다. 국회에서는 최근 여야가 경제민주화 법안 마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정부부처에서도 재벌 총수의 사익편취 행위에 대해서는 강도 높은 제재 수단을 강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이날 우려만 표시했을 뿐 어느 법안을 추진해서는 안 된다는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은 해당 기업들에는 마치 정부가 정치권과 함께 왼쪽 깜빡이(경제민주화)를 켜고 오른쪽으로 핸들(투자 독려)을 꺾고 있는 모양새로 비칠 수도 있다. 한성대 김상조(경제학) 교수는 “기업이 예측 가능한 투자판단을 하도록 대통령의 경제민주화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종=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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