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여성 셋, 여객기 정비통로 숨어 영화처럼 미국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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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여성 3명이 국내 항공사 여객기에 숨어 미국으로 밀입국하려다 적발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이들은 승무원들이 비행 도중 교대로 휴식을 취하는 공간인 ‘벙커(Bunker)’와 연결된 정비 통로에 숨어 미국까지 갔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들이 언제, 어떻게 이곳에 들어갔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국내 항공사의 보안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5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공항에서 중국인 여성 3명이 밀입국을 시도하다 미 세관국경보호국(CBP)에 체포됐다. 이들은 지난달 29일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해 당일 LA공항에 도착한 아시아나항공기에 숨어 타고 왔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CBP는 이 사실을 한국 측에 알렸고, 국토부는 아시아나항공에 인천으로 되돌아 온 항공기의 정밀 수색을 지시했다. 그 결과 벙커 뒤쪽 정비 통로에서 발자국 등 외부인이 머무른 흔적이 발견됐다.

 벙커는 장거리 노선에 취항하는 여객기 승무원들이 비행 도중 교대로 휴식을 취하는 공간으로 정식 명칭은 승무원 휴게실(crew rest)이다. 중국 여성들이 탔던 보잉 747-400 기종은 동체 뒤 꼬리날개 쪽에 벙커가 있다. 안에는 2층 침대가 빽빽이 놓여 있고 비행 도중 승무원들이 수시로 출입하기 때문에 숨어 있을 공간이 마땅치 않다. 이 때문에 중국인들은 이곳 뒤쪽에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가면 나오는 통로에 몸을 숨긴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중국인들이 언제 이곳에 몸을 숨겼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비행기를 타자마자 벙커로 직행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승무원이나 다른 승객들의 눈에 띌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이 때문에 “일단 항공권을 끊고 정식으로 탑승한 뒤 비행 도중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해 몰래 숨어들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해당 여객기는 LA 도착 전 홍콩 첵랍콕→인천(약 4시간), 인천→일본 나리타(약 2시간30분), 일본 나리타→인천(약 2시간30분) 노선을 운항했다. 인천에서 LA까지는 약 10시간30분이 걸린다. 한 공항에 도착해 다음 목적지로 출발하기 전 약 1시간 동안 청소를 한다. 만약 홍콩에서 인천으로 올 때 몸을 숨겼다면 20~30시간 이상 좁고 컴컴한 정비 통로에 머물렀을 수도 있다.

 중국인들이 일반인들이 잘 알지 못하는 벙커의 위치와 구조, 구체적인 항공 스케줄을 어떻게 알고 밀입국을 계획했는지도 미스터리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문적인 브로커가 개입했을 것”이란 추측도 나오고 있다.

 아시아나 측은 “현재 CBP의 조사가 진행 중”이라며 “우리도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국토부는 사건 발생 후 지난 2일과 9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가 보유한 벙커가 있는 5개 기종의 항공기에 대한 긴급 점검을 했다.

김한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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