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뜨거워지는 물속 개구리가 되지 않으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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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창규
경제부문 기자

한국 경제가 ‘개구리’가 된 적은 여러 번 있었다. 1960년대엔 이렇다 할 자원이 없고 가난했던 변방의 ‘우물 안 개구리’였다. 먹을 것이 부족해진 우물 안 개구리는 부단히 폴짝폴짝 뛰며 우물 밖으로 뛰쳐나가려고 노력했다. 혼자서 어려울 땐 동료의 등을 빌려 도약하기를 반복해 개구리는 30여 년 만에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었다. 적극적인 산업화와 수출주도형 성장 정책 덕에 더 높이 올라갔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시련을 겪는다. 큰 호수라고 생각하고 뛰어들었는데 알고 보니 펄펄 끓는 물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로 이 개구리는 큰 화상을 입었다. 수많은 동료가 직장을 잃고 자신을 지켜주던 나라까지 흔들리자 ‘금 모으기 운동’까지 벌였다. 이 개구리는 아픈 발을 부여잡고 재기를 위해 뼈를 깎는 고통을 감수했다. 어려움 속에서도 ‘다시 잘살 수 있다’는 희망만은 버리지 않았다. 부단히 치유한 덕에 아픈 발에는 새살이 돋았다. 물론 흉터는 남았지만 예전보다 강력한 발을 갖게 됐다.

 그러던 어느 날 또다시 뜨거운 물에 빠질 뻔했다. 2008년 9월 미국 금융사인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으로 촉발된 세계 금융위기 쓰나미였다. 이 쓰나미는 너무 강력해서 이웃을 휩쓸어버리고 한국 개구리까지 집어삼킬 듯이 달려들었다. 하지만 이미 ‘뜨거운 물’을 경험한 개구리는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노련하게 빠져나올 수 있었다. 물론 경미한 화상을 입었지만 이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 후엔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탄탄대로를 걸었다. 몸집은 갈수록 커져갔다. 지난해엔 세계 8대 무역대국에 오르고, 세계 100대 기업에도 3개나 이름을 올렸다. 그런데 갑자기 세계적인 컨설팅 업체인 맥킨지가 ‘서서히 데워지고 있는 물속의 개구리’라고 불렀다. 경제성장률이 갈수록 떨어지고 가계부채는 해마다 악화하고 있지만 정작 자신은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진단까지 덧붙였다.

 GE의 전 회장인 잭 웰치는 개구리를 뜨거운 물에 넣으면 바로 튀어나와 살아나지만 찬물에 넣고 서서히 물을 데우면 물이 뜨거워지는지 깨닫지 못하고 결국 죽게 된다는 ‘개구리론’을 펼치며 GE의 혁신을 이끌어냈다. 그러면서도 늘 위기를 강조하며 기업을 재탄생시켰다.

 맥킨지가 이번에 15년 만에 내놓은 한국보고서 ‘신성장 공식’의 내용 중 일부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기업 성장과 가계 소득의 디커플링(탈동조화), 빈곤한 중산층 증가를 지적하며 한국을 데워지는 물속의 개구리에 비유한 것은 정부 당국자가 새겨 들을 만하다. 그동안 한국은 너무 밖으로만 나가려 했지, 안은 돌아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인식하지 못할 때 진짜 위기가 찾아온다.

김창규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