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에 목숨 줄 걸지 말고 … 중소기업, 수출에 걸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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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봉균 건전재정포럼 대표는 “중소기업들이 해외 시장에 적극 도전해야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용철 기자]

“대기업에 로비하는 데만 목매지 말고 그 시간에 더 큰 해외 시장에 도전해야 한다.”

 강봉균(70) 건전재정포럼 대표가 국내 중소기업계에 던지는 충고다. 김대중 정부 당시 재정경제부 장관을 역임한 강 대표는 지난달 중순부터 중소업체인 청호컴넷에 상임경영고문으로 합류해 활동 중이다.

 은행자동화기기(ATM/CD)를 만드는 청호컴넷은 연매출 900억원 안팎의 중소기업이다. 강 대표는 이 회사가 역점을 두고 있는 동남아시아·중동 등 해외시장 진출 전략을 짜는 데 조언을 아끼지 않고 있다.

 강 대표는 14일 “중소기업에 둥지를 튼 것은 우리 중소기업계 전반의 해외시장 진출을 돕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청호컴넷의 이정우 대표 역시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등 동남아와 중동 시장 진출을 준비 중”이라며 “강 대표의 식견과 노하우가 해외 시장 공략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강 대표는 “중소기업계도 기술로 승부를 보겠다는 근성과 함께 과감히 해외 시장으로 나가겠다는 용기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우리 중소기업 중에는 해외에서도 충분히 통할 만한 탁월한 독자 기술을 갖고 있는 곳이 많다”며 “손톱깎이나 가위만 잘 만들어 세계시장을 석권한 중소기업도 있다”고 소개했다.

 은행자동화기기 기술이 있는 청호컴넷만 하더라도 해외 진출 가능성이 매우 높고 특히 동남아나 중국 등은 우리 중소기업이 나가도 충분히 승산이 있는 시장이라는 것이다. 그는 “하지만 우리 중소기업들은 좋은 기술이 있어도 우물 안 개구리처럼 국내 시장만 쳐다본다”며 “국내 시장에만 머무니 목숨 줄이 달린 대기업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에 지원만 바라는 중소기업의 수동적인 태도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다. 그는 “중소기업은 늘 약자라는 피해의식을 갖고 있다”며 “기술 개발이나 해외 시장 개척 없이 정부만 쳐다봐서는 중소기업이든 대기업이든 더 이상 생존할 수 없는 시대”라고 말했다. 강 대표는 “중소기업이라고 정부의 보호막 속에만 안주하면 더 큰 기업으로 성장하는 건 불가능하다”며 “독자 기술로 세계시장을 호령하겠다는 도전정신을 갖고 자기 채찍질을 해야 발전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강 대표는 현 정부의 경제민주화 정책은 방향을 잘 잡은 것이라고 했다. 그는 “대기업의 경제력 남용을 막고 중소기업을 키워야 우리 경제도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특히 “중소기업의 위상이 강화돼 좋은 일자리가 많이 생겨야 청년실업도 완화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 대표는 외환위기(IMF)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과 재정경제부 장관을 역임한 데 이어 국회의원(16~18대 의원) 등을 지낸 경제전문가다. 19대 총선을 앞두고 정치 은퇴를 선언한 뒤 국가 재정 건정성을 높이기 위한 건전재정포럼을 만들어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대형 로펌이나 대기업보다 중소기업행을 선택한 데 대해서는 “나는 평소 공대 나온 친구들이 참 부러웠다”고 설명했다. 기술이 있으니 대기업에서 은퇴하고 중소기업에 가서 기술 고문을 해주는 게 그렇게 좋아 보일 수가 없더라는 것이다. 그는 “대기업이나 대형 로펌들은 스스로 잘하는데 내가 가서 도와줄 일이 뭐가 있겠느냐”며 “큰 그림을 보는 능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에 힘을 보태면 더 큰 보람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정훈 기자
사진=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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