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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6 레이더 수리에 최장 3년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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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이달 초 중부지역 ○○전투비행단. KF-16(국내 조립한 F-16) 전투기 한 대가 굉음을 내며 가파르게 이륙해 훈련비행에 돌입했다. 그러나 민첩하게 움직이는 이 KF-16계열 중 일부 전투기는 요즘 같은 위기상황이나 실제 전투상황에선 투입되지 못한다. 적과 아군을 구별하는 ‘피아식별장치’ 내부가 고장 났기 때문이다.

며칠 뒤 내륙 ○○·○○ 전투비행단에서 KF-16들이 RWR이나 ASPJ 장비가 고장 난 채 이륙했다. RWR은 북한이 레이더를 켜면 이를 조종사에게 경고하는 전자장비, ASPJ는 재밍을 통해 북한의 레이더 탐지를 방해하는 전자장비다. 공군 관계자는 “이런 전투기들은 평시 후방 훈련엔 지장 없지만 전시는 물론 평시에도 북한 미사일 공격에 취약해 전방으로 접근하기 곤란하다”고 말했다.

한국 공군의 주력기인 최신예 F-15K(60여 대)와 F-16계열(170여 대) 전투기들이 부품 때문에 홍역을 앓고 있으며 때론 전투력 약화로 이어지고 있다. 이를 독점하는 대부분의 미국 제작사로부터 보급이 원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상황이 공군만의 노력으론 해결 못한다는 점이다. 부품이 고액이고 정비에 최소 수개월, 최대 3년이 걸리는 데다 한국에 정비 권한이 없어 반드시 제작사로 보내야 하는 품목이 많다. 이에 따라 전투기 운용기간인 8000시간(30년)을 기준으로 최소 22조원이 국외로 지출되면서도 기술 국산화는 되지 않고 있다.

이에 공군은 전투기 중 하이(high)급인 F-15K를 제외한 미디엄급 100~200대를 국산 제조하는 한국전투기사업(KFX)을 신속히 추진해 기술 자립을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1999년 이 사업이 결정됐지만 14년이 지나도록 갈팡질팡하고 있다. 공군에선 ‘자주국방을 강조한 노무현 대통령은 결정을 미뤘고 이명박 대통령은 경제성에 매몰돼 KFX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문제는 이렇게 될 경우 발생할 전력 공백이다. 공군은 올해가 KFX 진행을 결정할 마지막 시기며 이를 놓치면 전투기 국산화는 수십 년간 거의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정부는 다시 6차 시험 평가를 계획하며 결정을 미루고 있다.

공군 전력기획참모부 송택환 차장은 “당장 시작해도 2019년 기준으로 전투기가 100대 부족하며 결정을 늦추면 그런 상황이 계속될 것”이라고 걱정한다. 전력 공백을 메우려고 해외 직구매를 하면 도입·운용비, 성능개량비 등 22조원이 해외로 유출되고 이에 따른 산업·기술 파급효과, 고용효과도 사라진다. 전투기 사업에서 초기 구입비는 전체 비용의 30%, 후속 군수지원 비용은 70%다. 한 국책기관 관계자는 “박근혜 정부도 뚜렷한 입장을 정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같은 사실은 KFX 현황 파악을 위해 중앙SUNDAY가 공군에 협조를 요청해 군수사령부, 81·82·86정비창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부품 때문에 100% 성능을 발휘 못하는 전투기들은 F-NORS(불완전 가동 항공기)로 불린다. 공군 관계자는 “KF-16의 경우 평시 85% 공식 가동률을 유지하는데, F-NORS 때문에 전시 가동률이 10%쯤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가동률 유지를 위해 공군 무기체계팀이 미 공군 및 16개 협력회사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려 애쓴다. 그러나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공군 군수사령부 황치원(대령) 전투기관리처장은 “국외 도입 전투기들의 부품을 제작사가 독점 공급하는데 특히 항공전자 부품은 수리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100% 고장 예측이 어려운 데다 값이 비싸서 미리 비축해 둘 수 없다”고 설명했다. 전투기 부품은 34만여 개다.

*** 美, 생산 중단 부품 구입비 갈수록 늘어

4월 9일 서산의 86항공전자정비창. 이문수 창장(대령)의 사무실 벽에는 붉은 글씨가 빼곡히 적힌 대형 표가 걸려 있다. F-15K와 KF-16 부품인데 전문가만 이해할 용어들이다. 이 대령은 “검은색은 국내 정비 가능 부품, 붉은색은 해외 정비 부품”이라며 “F-15K는 국내 정비가 거의 안 되고 KF-16은 품목수 기준으로 30~40% 가능하다”고 말했다.

붉은색으로 쓴 부품들이 문제의 핵심이다. 이들 장비는 수리를 위해 미국으로 보내야 한다. 그런데 F-15의 ‘적외선 탐색 및 식별 장비’인 IRST(미국 록히드 마틴)의 평균 수리 기간은 400일이다. 미 레이시온이 제작하는 레이더 장비의 평균 수리 기간은 234일, 미국 BAE의 레이더(FDL) 평균 수리기간은 260일이다. 미 NGC의 F-16 관성항법장치(INU)는 평균 수리기간이 200일, ASPJ는 최대 3년이 걸린다. 그러나 국산 T-50 훈련기는 고장 시 3~4시간이면 해결된다.

기술통제도 심하다. F-15 부품을 국내 업체는 개발하지 못한다. 보잉의 기술협약서(TAA) 때문이다. 직구매 전투기를 특성에 맞게 개발하려면 수출승인(E/L)을 받아야 한다. KF-16의 경우 랜턴 등 46개 품목은 기술 이전이 제한된다. 비용은 더 큰 문제다. 공군은 최근 F-16의 앞전날개(LEF)를 개조·교환하기 위해 제조사에 견적을 의뢰했다. 미국 록히드 마틴은 전체를 교체하는 게 좋다며 대당 1억원을 요구했다. 이에 군수사는 LEF의 앞부분인 노즈캡만 교체하기로 했다. 비용은 대당 200만원. 그러나 그런 ‘바람직한’ 사례는 많지 않다. F-15K의 IRST 모조품 제조에 국내 견적은 개당 4000달러지만 제조사인 보잉은 15배나 비싼 6만 달러를 요구했다. F-16의 안테나 수리비도 국내 업체는 2200만원을 불렀지만 해외에선 1억5000만원을 요구했다.

94년 도입 당시 52억원이었던 ICS는 지금 92억원이다. 가격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 제작사인 미국 NGC가 생산을 중단해 재고가 줄었기 때문이다. F-16용 ASPJ의 도입 단가는 23억5000만원. 그 안에는 칩 역할을 하는 휴대전화 크기의 전자카드가 50여 개쯤 있는데 어떤 카드는 수리하려면 10억원이 든다. 황 처장은 “뜯어보면 별것 아닌데 우리가 못 건드리는 게 많다. KF-16의 50%, F-15K의 60~70%가 그런 전자제품”이라고 말한다. 공군 자료에 따르면 2010~2013년 지출된 F-15K와 F-16계열 수리부속·정비비용은 1조1967억원. 그 가운데 96%인 1조1553억원이 제작사에 지불됐다. 제작사는 거의 미국 회사다. 4년에 그 정도면 항공기 사용기간인 30년간 9조원 가까이 유출된다.

게다가 부속 장비도 바가지에 가깝다. 전자부품 검사 장비가 충주·서산·군산 기지에 각각 1대씩 모두 3대 있는데 연간 기술지원비가 20억원이다. 매달 받아보는 공군 운용항공기 기술도서 비용이 연 51억원, 기술 지원비가 F-16계열은 연간 65억원이다. 그런 비용을 종합한 F-16계열의 연간 유지비는 2007년 2102억원에서 2013년에는 3400억원으로 160% 올랐다.

성능개량도 돈 먹는 하마다. 공군은 2009년부터 F-16과 KF-16의 전자장비를 성능개량하고 있다. F-16의 경우 2009~2015년 2000억원, KF-16은 1조8000억원이 들어간다. 항공기 사용기간인 8000시간(30년)을 기준으로 두 차례 대대적인 성능개량과 소규모 성능개량을 하는데 첨단기술일수록 잦고 그 돈은 거의 다 외국 제작사들에 들어간다. 공군 관계자는 “기술력이 없는 우리가 전투기 국제계약에서 근본적으로 불리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결국 초기 구입비인 F-15K 6조원, KF-16 5조원, 부속품·정비비 10조원, F-16계열 성능개량비 최소 2조원을 합해 최소 22조원이 30년에 걸쳐 미국 제작사에 지불되는 것이다. 40년을 사용하면 더 는다. 여기에 F-15K 성능개량은 계산도 안 했다.

더 큰 문제는 제작사에 지불한 돈의 활용 내역을 모른다는 점이다. 공군 관계자는 “바가지를 쓰는지 영문도 모르고 돈을 주는 꼴”이라고 말한다.

생산 중단으로 인한 애로도 있다. KF-16 항공기의 레이더인 APG68 V-7이 고장이 잦아 가동률이 떨어진다. 그러나 제작사인 NGC는 수익성이 낮다며 생산라인을 폐쇄했다. 이에 공군은 2016년 새 AESA 레이더로 교체하기까지 터키에 F-16용 구형 V-7 구입을 타진하고 있다. 황 처장은 “터키에선 성능개량이 안 끝났는데 왜 파느냐는 반대 여론이 있어 협조가 쉽지 않다”고 말한다. 

안성규 기자, 강신우 인턴기자 askm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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