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지식] 전쟁은 장사 … 손익으로 따져본 핵개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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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세상에 공짜는 없다. 전쟁의 밑바탕에도 돈이 깔려있다. 사진은 핵 폭발 버섯구름. [중앙포토]

성, 전쟁 그리고 핵폭탄
유르겐 브라우어 외 지음
채인택 옮김, 황소자리
526쪽, 3만7000원

‘전쟁은 내치(內治)의 연장이다.’ 독일의 전략가 클라우제비츠의 명언이다. ‘전쟁은 속임수(詭)다.’ 고대 중국의 병법가 손자의 지적이다.

 후대에 다방면에 걸쳐 영향을 미친 동서양 군사사상가들의 말이니 맞을 게다. 한데 미국의 경제학자와 역사학자의 공저인 이 책은 한마디 더 보탠다. ‘전쟁은 장사다’라고. 군사행위의 경제적 의미를 분석한 책은 이렇게 읽힌다.

 지은이들은 11세기부터 20세기까지 시대별로 나눠, 6가지 틀로 군사행위의 경제적 측면을 분석했다. 기회비용, 수확체감, 정보 비대칭, 예상 한계비용과 이익, 자본-노동의 대체 등이 그것이다. 그 결과 경제학이 학문으로 등장하기 전부터 경제이론이 인류 전쟁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결론짓는다.

 예를 들면 1년치 세수를 투입할 정도로 성(城)을 세우는 데 무리를 했던 중세 영주들은 ‘기회비용’이란 면에서 보면 탁월한 선택을 한 것이었다. 잘 지은 성채 하나는 상비군을 유지하고 들판에서 전투를 치르는 비용보다 훨씬 싸게 먹혔기 때문이다.

 지은이들은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에서 붐을 이뤘던 용병 활용, 2차 대전 당시 연합군의 독일 대공습 등 굵직한 전사(戰史)를 다루지만 아무래도 눈길을 끄는 대목은 냉전시대 프랑스의 핵 개발 전략이다. 원재 ‘성, 전투 그리고 폭탄(Castles, Battles and Bombs)’에 ‘핵’을 살짝 끼워 넣은 번역판 제목도 최근의 북핵 사태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는 1960년 북아프리카 알제리의 르간에서 원자폭탄 실험에 성공했다. 미국과 소련을 제외하고 ‘핵클럽’에 가입한 첫 나라는 아니었지만 국제정치에 미친 영향은 심대했다. 세계전략에서 프랑스라는 변수를 고려해야 했던 소련은 보복을 강조했다. 미국 역시 나토와 거리를 두고 국제문제에서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프랑스를 반기지 않았다.

 그렇다고 당시 프랑스의 국력이 핵무기를 개발, 보유할 정도로 여유롭지는 않았다. 드골 집권 당시 프랑스 군 전체 예산은 영국의 70%, 미국의 폭격기 예산의 두 배밖에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프랑스는 왜 과학 인력의 10%, 전기산업의 60%, 우주산업의 70%를 들여가며 핵개발이란 무리수를 감행했을까.

 다양한 요소가 작용했다. 우선 ‘프랑스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강력한 군사력이 필요했다. 디엔비엔푸 전투 패배와 수에즈 사태에서 보여준 미국의 미온적인 태도로 ‘핵 우산’의 한계를 실감한 것도 작용했다. 무엇보다 재래식 군사력에 비해 핵무기가 비용 대비 파괴력, 궁극적으로는 방위력 혹은 억지력이 효과적이란 점이 크게 작용했다.

 국방예산의 연이은 삭감으로 1940~50년대 프랑스군의 전력은 나토에서 수하 역할을 맡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약화됐다.

 반면 2차 대전 이전의 ‘일류 국가’로 올라서려는 국민적 열망은 강했다. 그러기에 핵 개발이 공식적으로 결정 나기 전에도 군 일부에선 관련 연구가 진행될 수 있었다. 결국은 1956년 기 몰레 총리는 프랑스의 군사적 핵 개발권을 공표했고 상원 역시 핵무기 소유를 지지하고 나섰다. “핵무기는 공식적으로 평화적 노력의 부산물 정도”라는 당시 프랑스 정부의 명분은 전혀 낯설지 않다.

 프랑스의 선택은 절반의 성공으로 끝났다. 비용-편익 분석으로는 그렇다. 국제 문제에 발언권을 강화하려면 재래식 군사력의 개입이 필요한데 이는 극도로 약화됐기 때문이다. 91년 걸프전에 참전한 프랑스 ‘첨단’전투기는 야간작전을 수행할 수 없을 정도였다.

 정치적으로는 얻은 게 많았다. “핵은 프랑스 외교의 도구가 되고 장엄성이 됐다. 궁극적으로는 초강대국 규율에 대한 도전이었다. (자주국방 능력을 배경으로) 시민의 최종적 충성을 요구할 도덕적 권리까지 얻었다”고 썼다.

 풍부한 자료를 독특하게 해석한 이 책은 전쟁재원 조달, 자원의 배분과 경제적 영향 등에 초점을 맞춘 기존의 ‘전쟁 경제학’책과는 사뭇 다르다. 최근의 북한 행태와 관련해 시사하는 바도 적지 않다.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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